MUZINE

50호


내리쬐는 햇볕에 드러나는 피부가 따끔거릴 지경인 7월입니다. 시원한 음악, 큰 그늘, 신나는 물놀이, 무서운 이야기 등 여러 방법으로 우리는 더위를 잊고자 애씁니다. 예나 지금이나 덥기는 매한가지겠습니다만, 요즘은 차가운 바람을 만들어주는 선풍기, 냉풍기, 에어컨의 도움을 가장 크게 받기도 합니다.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서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시원하게 냉장해 둔 과일을 먹거나 열기를 식혀줄 댓자리를 깔고 목을 시원하게 해 줄 재질의 베개를 마련하기도 하고, 맑고 시원한 시각효과를 주는 것들을 다양하게 배치해봅니다. 이 모든 피서법은 새로 생긴 것이 아니지요. 우리 선조들에게서부터 경험을 통해 이어져 온 방법들입니다. 그렇다면 더위를 피하던 지혜가 담겨있는 박물관 소장품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번호 뮤진에서는 더위를 피하며 현명하게 여름을 지냈던 방법이 반영된 유물들로 E-특별전을 진행합니다.

더위를 식히는 데 더 없이 좋은 것은 시원한 바람과 그늘이겠지요. 여기 세 벗이 모여 울창한 소나무숲 계곡물이 흐르는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림의 제목이 <송계한담(松溪閑談)>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세 사람은 무겁거나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닙니다. 한 여름 볕을 피해 여름에 그 가치가 더 높아지는 낙원을 찾은 것이지요.
이 선면화(扇面畵)는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의 작품으로,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이라는 호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소나무와 흐르는 물 그리기를 즐겨했습니다. 계곡물이 속도를 못 이겨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화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화면을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 하단방향으로 평평하고 여유가 있는 양쪽 땅 사이를 계곡물이 폭포에서 시작된 바람을 이끌고 지나갑니다. 산중의 찬 기운을 담아 흐르는 물이 일으키는 바람이니 얼마나 시원했을지 상상만으로도 주변에 찬 기운이 맴도는 기분입니다. 게다가 그늘은 어떻습니까. 촘촘하게 겹치는 솔잎들이 하늘에서 내리쬐는 뙤약볕을 등지고 세 사람의 한담을 지켜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등을 보이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한쪽 무릎을 세워 팔을 기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비스듬히 앉아있습니다. 격식을 차릴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윗옷 앞단을 풀어헤친 듯 편히 개방하고 무심한 듯 다른 데 시선을 둔 태도에서 알 만합니다. 세 벗의 반대편 화면은 밝은 색으로 열어두어 자칫 꽉 찬 구도에 부채라는 작은 화면에서 느낄만한 답답함을 줄였고, 구부러지고 사선으로 자란 소나무에 농묵을 사용하여 동세를 살렸으며 멀어지는 소나무숲이 선면 안에서 완성되지 않고 잘린 것은 화면이 열려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 선면화가 그려진 부채로 바람을 일으킨다면 화면 안의 폭포에서 생겨난 찬바람이 불어 올 듯한 기분이 듭니다. 크기와 실용성, 그리고 예술적인 면에서 선물도 하고 품평도 했던 선면화에 그린 ‘송계한담’이라는 주제는 참으로 적절합니다.

한여름 찬 물에 발을 담그는 것은 바로 즉시 시원함을 느끼고자 할 때 아주 흔하게 시도되는 방법입니다. 시원한 음료나 수박을 먹으며 선풍기를 곁에 두고 소규모의 피서를 즐기는 것도 여름의 낙이 되지요. 옛 사람들은 이런 피서법을 그림으로도 그렸습니다. 탁족도(濯足圖)는 조선시대 여러 사람들이 즐겨 그린 소재인데, 이런 주제가 그림으로 ‘탁족도’에 담긴 의미는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이 지은 <초사(楚辭)> 중 ‘어부사(漁父辭)’의 내용과 관계가 있습니다. 내용 중

흐르는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흐르는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는다(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나아가고자 하는 세상을 보고 경우에 따라 은둔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인데, 이 내용을 기본으로 무릎 위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다리를 꼬아 물에 담근 선비나 은사(隱士)를 그려내었습니다. 달리 말해, 탁족도는 은둔하는 선비나 세상에 나아가고자 생각한 바가 있는 사람들을 그렸다는 것이지요. 『송도기행첩』에 실린 16폭 중 한 장면으로 태종대를 묘사한 이 그림의 화면 중앙 하단에는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선비들이 이 ‘탁족’을 주제로 그림을 남기는 현장입니다. 아마도 탁족이 당시 선비들 사이의 풍류였을 것이며, 이를 남기는 역할을 한 이가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화가이며 평론가이기도 했던 강세황(姜世晃, 1713 ~ 1791) 자신 이었을 것입니다. 이 그림은 진경산수인 점, 원근법 등 서양의 화법이 보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종 모양의 바위를 끼고 흐르는 물을 선염으로 표현했다는 점, 수면에 호분을 입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러한 표현법과화면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푸른 색상을 통해 맑고 산뜻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유물설명 더보기

마당이 보이는 집 대청마루나 문을 활짝 걷어 올린 방 안에서 간간히 불어오는 여름바람과 함께 잠으로 빠져든다는 상상만으로도 은근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지금처럼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해주는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었던 시절에는 낮이 긴 여름의 밤에 불면으로 뒤척이게 되는 일이 더욱 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잠이 드는데 도움이 될 만한 대자리, 발, 모시 재질의 침구, 죽부인 등 다양한 물품들이 도움을 주었는데 그 중에는 베개도 있습니다. 가벼운 나무 재질의 목침(木枕)도 있었고, 지금 소개할 도자기 배게 도침(陶枕)도 조금이라도 더 쾌적하게 잠들기 위한 도우미 역할을 했습니다. 중국에서 고대로부터 사용했던 도자기 베게는 송대에 이르러 크게 유행하고, 꾸밈법도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번에 선보이는 고려시대 청자 상감 모란 구름 학 무늬 베개(靑磁象嵌牡丹雲鶴文枕)의 화면 꾸밈도 도자기 배게 표면꾸밈이 발달했음을 보여줍니다.
실루엣에 곡선이 들어간 유려함도 시선을 끌지만 역상감 기법으로 꾸민 연꽃무늬와 당초무늬, 흑백상감의 강세도 아름답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도자기 베개로 머리를 받치고 단잠에 빠져드는 기분은 어떠했을까요? 당나라 현종대의 이야기인 한단지몽(邯鄲之夢)은 도자기 베개를 베고 측면 구멍으로 빠져들어 인생의 장대함을 낮잠으로 겪고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는다는 내용입니다. 한여름 더위를 피해 잠깐 시원한 베개를 통해 꾸는 꿈은 이처럼 강렬할까하고 생각해봅니다.
유물설명 더보기

습기가 느껴지는 여름의 강가마을을 그린 이 작품은 윤의립(尹毅立, 1568~1643)의 작품으로 전해집니다. 도끼로 나무를 찍은 듯 표현하는 부벽준(斧劈皴)은 산과 언덕의 형태에 힘을 주어 화면 하단 중심으로부터 반원형으로 돌아 화면 왼쪽 상단을 향해 옅게 흩어지는 풍경과 대비를 이룹니다. 산과 암벽을 부벽준으로 그리고 굴곡이 심한 나무를 그려 넣은 점에서 중국 남송의 화원(畵院)에서 활약했던 마원(馬遠)과 하규(夏珪)에 의해 형성된 화파인 마하파(馬夏派)의 특징을 보이면서도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그리는 마하파의 특징을 벗어나 자신의 구도를 보여주는 변화를 드러낸 작품입니다. 다른 계절에 비해 색을 확연히 쓰지 않는 경우 화면상으로 계절감을 나타내기가 쉽지않은 여름의 산수이지만 물기어린 분위기와 폭포의 배치 등을 통해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가 더위를 피할 수 있지만, 지금이 여름이라고 알려주는 듯한 작품을 놓고 감상하는 것도 더위는 피하되, 여름을 온전히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유물설명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