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0호


박물관 건물 뒤편 후원을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전통염료식물원은 작은 동산처럼 생겼다. 아치형 입구와 작은 길을 내어둔 모습이 규모와 더불어 아기자기하지만 이 식물원은 “전통염료”라는 테마를 가졌기 때문에 그 외양이나 꽃의 색상, 가지의 뻗은 형태, 주변 경관과의 어울림을 우선시하는 등의 꾸밈을 중시하지 않고 전통염료의 재료가 되는 식물들을 작은 길을 따라 실속 있게 보여준다.

자연상태에서 우연히 발견되었을 염료는 인류 초기에는 인체를 직접 치장하는데 쓰였다. 이는 자연에서 직접 채취한 염료가 인체에 무해함을 전제했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먼저 검증된 후 이를 활용하여 의복을 꾸미는 염색의 용도로 쓰였을 것이다. 의복의 재료가 다양해지고 재료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형태가 생겨났으며 이에 취향이나 상징 혹은 용도에 따라 색이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직급이나 사회적인 계층을 구분하는 기준을 복식의 색으로 삼아 상류층이나 고위관직자들만이 쓸 수 있는 색이나 천의 종류가 있었다. 따라서 천을 염색하는 일 또한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의 기능이 필요한 일이었으며 그들은 자연에서 색을 가진 식물들로부터 색을 얻는데 특화되어갔을 것이다.
인류는 문명 발상지에서 이미 기원전 수천년 전부터 고도의 염색문화를 발전시켜왔으며 특히 현대에도 염색된 천으로 제작된 의류가 인기를 끄는 인도의 염색기술이 매우 뛰어났다. 이러한 기술은 세계 각지로 전파되었는데 그 중 동쪽으로 전파된 루트가 중국, 우리나라, 일본이다. 우리나라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의복이나 일본의 쇼소인(正倉院)에 보관되어있는 신라의 유물을 볼 때 상고시대부터 염직기술을 비롯하여 자수 등 색채문화가 화려하게 발달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자연으로부터 얻어 원하는 색채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했음을 반증하는 사실로, 자연염색분야에서의 지식의 축척이 원활했음을 의미한다.

전통염료의 색채는 대자연과 인간관계에 바탕을 둔 오행사상에 의해서 정립된 오방색인 파랑, 하양, 빨강, 검정, 노랑과 그 중간색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들 색상은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식물 약 90여 종의 뿌리, 줄기, 잎, 열대 등에서 얻어지는 천연 소재이다. 현대에 와서는 표현불가능한 색의 표현이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물품들이 색을 입고 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생각보다 큰 인과율이 적용되고 화학반응을 통한 대량염색은 환경을 해치는 요소가 되었다. 효율면에서 분명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자연의 도움을 받아 해롭지 않게 색을 취하는 방법을 발전시키기보다 더 편하고 빠르게 많이 생산해 낼 수 있는 방식의 손을 너무 쉽게 들어준다.
‘유기농’, ‘자연친화’라는 말이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가 되고 있지만 소비의 측면에서 선택의 기준이 되는 단어일 뿐인 요즈음이다. 따라서 전통염료식물원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을 살펴보고, 산업화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함도 유지할 수 있었던 조상들의 진짜 자연친화적인 지혜를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해본다.

꿀풀은 달리 꿀방망이, 하고초(夏枯草)라고도 불리는 꿀풀과의 식물이며 크기는 높이 20~30cm정도, 네모진 줄기 전체에 흰털이 있다. 꽃을 따서 밑부분을 빨면 단맛이 난다. 양지에서 흔히 자라는 이 풀은 관상, 약용, 염색용으로 쓰이는데, 어린순은 먹는 용도로 쓰이며 식물 전체가 소염제, 이뇨제 등으로 약용 가능하고 염료식물로 이용할 때는 줄기째 채집하여 이용한다. 매염제에 대한 반응이 좋아 다양하고 짙은 색을 얻을 수 있다. 염색하면 색은 다갈색으로 나온다.
일반적으로 ‘쪽’으로 불리는 쪽풀(藍草, indigo plant)은 마디풀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로, 줄기는 곧고 높이가 60-70cm정도이다. ‘쪽’이라는 명칭에는 색명, 염재의 의미가 함께 포함되어있다. 식물로서의 쪽을 말할 때는 '쪽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쪽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조석시대 이후이다. 살아있을 때는 녹색이지만 채취하여 말리면 짙은 남색으로 변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쪽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빛보다 푸르다는 뜻의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쪽염색은 횟수가 증가할수록 그 진하기와 깊이가 확연히 증가한다.
살균작용을 하는 애기똥풀은 줄기를 자르면 진노랑의 유액이 나오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며 달리 까치다리, 씨아똥, 젖풀, 백굴채 등으로도 불린다. 양귀비과의 두해살이풀로 높이는 50~100cm이며, 잎은 어긋나게 붙고 깊이 갈라졌다. 이른 여름과 여름철에 노란 네 잎 꽃이 핀다. 매염제 없이 황색계통 (황갈색)으로 염색할 수 있다.

뽕나무 열매를 오디라 부르는데, 요즈음은 오디로 술을 담그거나 요리를 하는 등 친근한 이름이 되었다. 염색에 쓰이는 뽕나무 산뽕(山桑, Wild mulberry tree)은 뽕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지는 넓은 잎 작은 큰키나무로 높이 7~8m에 달한다. 4~5월에 꽃이 피고, 7~8월에 자흑색의 열매가 익는다. 500~1,400m의 산지에서 자라며 잎은 누에의 사료로 쓰고 나무껍질은 약용이나 제지용으로 쓴다. 뿌리를 이용하여 황다색으로 염색할 수 있다.

소리쟁이(羊蹄 · 土大黃, Yellow Dock, Curled Dock)는 소루쟁이, 송구지, 솔구지, 소로지라고도 불리며 중국에서는 토대황, 양제근이라고 부른다. 높이 60~150cm까지 자라며 잎은 버들잎 모양이고 연한 황록색의 작은 꽃이 줄기 끝에 핀다. 10월에 종자가 익으면 식용, 약용으로 쓰인다. 어린잎을 삶아 나물로도 먹는데, 독성이 있어 많은 양을 섭취할 경우 설사, 구토나 위장장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잎을 이용하여 녹색으로 염색할 수 있으며, 염색을 할 때 뿌리는 생뿌리를 쓰는 것이 좋다.
엉겅퀴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가시나무, 항가새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전 지역 및 일본, 중국, 우수리에 분포한다. 줄기는 곧추서며 가지가 갈라지는데, 높이 50~100cm정도이고 전체에 흰색의 털과 함께 거미줄 같은 털이 있다. 한방에서는 건위, 이뇨, 신경통 치료에 쓰인다. 녹색잎과 줄기를 염재로 사용하는데, 자연염색에서 잎은 갈색 염료로 이용한다. 매염에 따라 백갈색, 황갈색, 녹회색 등으로 염색이 가능하나 전체적으로 색상이 탁한 편이다.
타원형 열매가 옛날 술단지(梔)와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치자(梔子, Gardenia)는 열대 빛 아열대 식물로서 6~7월에 유백색 꽃을 생식하거나 향료를 뽑는다. 지자(支子, 枝子)라고 쓰기도 하는 치자는 중국, 한국, 일본의 책에 기록이 남아있으며 1500년경 중국에서 도입하여 주로 남쪽에서 재배했다. 열매의 모양에 따라 둥근 것은 산치자(山), 긴 것은 수치자(水)라고 부르며 약용으로도 쓰였던 치자는 진황색 염료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곧추선 형태에 윗부분의 가지가 갈라지는 형태가 솔잎을 닮은 솔나물은 높이 30~100cm이다. 잎은 8~12개씩 돌려나고 선형으로 길이 2~3cm이며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는 뒤로 말린다. 6~8월에 황색의 꽃이 피고 줄기 끝과 잎짬에 나는 축이 갈라져 전체적으로 원뿔모양을 이루는 꽃의 배열에 많은 꽃이 달린다. 전국의 산야에 자생하며 염색할 때는 꽃과 뿌리를 쓰고 황색과 적색으로 염색할 수 있다. 어린잎은 식용하며, 전초를 봉자채라 하여 약용한다. 꽃, 뿌리를 이용하여 황색으로 염색할 수 있다.

정말 가까이서 땅에 심긴 식물과 그 식물이 주는 약효와 염료로서의 기능, 결과가 되는 색의 아름다움까지를 생각하는 인식이 자리 잡고 전통방식의 염색과 우리의 색채를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 국립중앙박물관의 전통염료식물원을 통하여 가져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