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0호


지금 박물관에서는 I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展>은 19세기 후반 인상주의 이후 새롭게 등장한 미술가들과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문화를 조명하는 전시이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후기작품 에서 부터 폴 고갱(Paul Gauguin),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앙리 루소(Henri Rousseau)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의 대표작들과 조각, 공예, 드로잉, 사진 등 175점에 이르는 작품들이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다. 프랑스 국립 오르세미술관에서 엄선된 작품들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근대 미술의 탄생을 주도했던 화가들의 강렬한 개성과 근대 도시로 급변하던 파리의 다양한 모습들이 담겨있다.

19세기의 파리는 근대 도시로 변모하고 있었다. 드넓게 뻗은 도시의 대로에는 가스등과 새롭게 등장한 전기 조명이 휘황찬란한 빛을 밝히고 있었고 기념비적 건물들이 들어선 거리에는 도시의 삶을 즐기는 많은 인파로 붐볐다. 1880년에 50만이었던 파리 인구는 1896년이 되자 250만에 이르렀다. 나폴레옹 3세의 재위기간(1852-1870) 동안 도시 재정비 사업을 주도한 조르주 외젠 오스망(Georges-Eugène Haussmann) 남작은 파리를 완전히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이었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20개의 행정지구가 이때 정비되었고 각 구역마다 주택과 함께 공원, 공공건물, 문화 시설들이 세워졌다. 좁고 미로 같았던 도로들이 직선의 대로(boulevard)를 중심으로 통합되면서 기존의 건물들이 해체되고 많은 건물이 새롭게 들어섰다. 당시 유리산업과 철강기술의 발전에 따라 거대한 유리로 지붕을 만든 건축물들이 만국박람회를 통해 선보이기도 했다. 1889년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건설된 에펠탑은 근대 물질문명의 상징으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새롭게 탄생한 웅장하고 질서정연한 거리 위에서 파리 시민들은 산책과 여가를 즐기며 밝고 활기찬 근대 도시의 삶을 누렸다.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던 파리는 19세기 후반부터 가장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을 구가하고 있었다. 부유한 상류계층과 경제력을 갖춘 신흥 부르주아들은 밤마다 화려한 무도회를 열었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여가생활로 경마장, 음악회, 오페라를 즐겼다. 이들을 모델로 한 초상화에서 나타나는 패션이나 장신구는 당시 유행에 민감했던 이들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사교계를 주름잡던 이들 이외에도 무용수, 가수, 배우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유행과 쾌락을 찾아 파리로 몰려들었고, 이들은 더없이 아름다운 시절, 파리의 화려한 삶을 즐겼다.
그러나 파리에서의 삶이 오직 ‘축제의 삶’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었다. 파리의 거리 위에는 새로운 도시의 삶을 누리려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고단한 일상을 보내는 서민들과 노동자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19세기 말 파리의 화가들은 이 거리의 순간을 포착하고 그들의 삶을 표현하고자 했다. 비 오는 거리 위에서 허둥대는 군중들을 통해 익명성이 가중되는 도시의 삶을 표현하고, 도시 외곽의 회색빛 건물과 하늘을 통해 도시화의 이면에 자리 잡은 쓸쓸한 정서를 포착했다. 공장 노동자, 하역 인부들, 빨래하는 여인 같은 서민들의 모습은 파리의 화려한 도시 생활에 가려진 소박하지만 바쁜 일상이 담겨있다.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에드가 드가(Edgar Degas) 등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순수한 색채에 풍부한 빛을 담아 근대 도시 파리의 일상적인 삶을 주제로 삼았다. 빠른 붓 터치로 동시대의 삶을 포착했던 그들의 작품은 혁신적인 변화였으며 현대미술의 탄생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야외로 나가 화가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주제를 그린다는 것은 1870년대까지 이 시대 새로운 화가들을 묶어주는 공통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도시적 주제보다는 화가 개인의 예술적 지향에 따라 변화해 나갔다. 1880년대 이후 모네는 대상의 형태보다 빛에 따라 순간적으로 변하는 색채의 표현에 더욱 집중했고, 드가는 조각과 화려한 색채의 파스텔화로 관심을 돌렸다. 르누아르는 고전미술에 영향을 받아 부드러운 색채로 인체의 윤곽과 입체감을 돋보이게 표현했다. 결국, 모네와 르누아르는 1886년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하지 않았고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와 폴 시냑(Paul Signac)은 동시대 과학적인 광학이론에 영향을 받아 ‘점묘법’으로도 불리는 ‘신인상주의’ 작품을 선보였다.
1880년대 이후 많은 화가들은 도시의 소음과 분주함에서 완전히 벗어나 신비로운 자연이나 정신적인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산업화 되어가는 도시를 벗어나 야생적이고 원시적인 자연을 갈망했던 폴 고갱은 1886년 프랑스 서쪽 브르타뉴 지역의 작은 마을인 퐁타방(Pont-Aven)으로 향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예술가 그룹을 이끌며 이국적이고 영적인 주제를 분명하고 단순화된 형태와 강렬한 색면으로 표현하는 ‘종합주의’라 불리는 양식을 발전시켰다. 1886년 파리에 도착한 빈센트 반 고흐는 곧 파리에서의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1888년 남부 프랑스 아를(Arles)로 떠났다. 이곳에서 강렬한 태양 아래 자연과 하나가 되는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꿈꿨던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출한 강렬한 작품들을 남겼다. 파리에서 화가로서 성공적이지 못했던 폴 세잔도 1880년대 초반부터 자신의 고향인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지방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연을 본질적인 기하학적 형태로 환원하는 방식을 탐구하며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와 같은 20세기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일련의 작품들을 제작했다.

1886년 시인 장 모레아스(Jean Moréas)의 <상징주의 선언>을 계기로 상징주의가 미술을 비롯해 문학과 철학 등 세기말 전 예술 장르에서 유행했다. 상징주의자들은 과학과 기술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를 거부하며 물질적인 세계보다 관념이나 환영, 꿈을 표현하고자 했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를 본받아, 젊은 작가들은 묘사보다 암시를 선호하고 지칭보다 은유를 우선시했다. 피에르 퓌비 드 샤반느(Pierre Puvis de Chavannes),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등 상징주의 화가들은 신화나 꿈, 무의식과 비물질적 주제에 관심을 갖고 실재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그려냈다. 앙리 루소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시대를 같이 했지만,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국적인 세계를 표현했다. 그의 대담한 표현 방식은 20세기 초현실주의의 흐름을 이끌어내는 하나의 바탕이 되었다. 회화의 목적이 자연의 재현만이 아니라는 신념은 19세기 말 폴 세뤼지에(Paul Sérusier),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 에두아르 뷔야르(Édouard Vuillard) 등 스스로 ‘나비파(Les Nabis)’라 불렀던 일군의 화가들에게도 계승되었다. 히브리어와 아랍어에서 유래한 ‘나비’ 라는 단어는 ‘선지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들은 폴 고갱의 순수한 색채에 영향을 받아 대상을 평면적이고 장식적으로 표현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예술을 추구하고자 했다.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展>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찬란하게 꽃 피웠던 예술사적 변화들이 수 놓여 있다. 인상주의 이후 근대미술의 전개를 이끌어간 거장들의 작품들과 함께 이번 전시에서는 르네 랄리크(René Lalique)와 에밀 갈레(Émile Gallé)로 대표되는 아르 누보(Art Nouveau) 공예품, 근대 도시 파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축 데생들, 테오필 스탱랑(Théophile Steinlen)과 같은 작가들이 바라본 파리의 삶이 담긴 데생 작품들, 그리고 에펠탑 건축 현장을 담은 루이 에밀 뒤랑델(Louis-Émile Durandelle)의 사진과 당대 활동했던 화가들의 아틀리에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사진 등 다채로운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20세기로의 전환기를 살아갔던 화가들의 숨결과 동시대 예술의 수도이자 근대 도시로서의 파리의 모습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뮤진 MUZINE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