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0호


유물박사 교실

뮤진 유물박사 교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곳은 뮤진 사이버 박물관에서 만나보았던 <E-특별전>과 <뮤진 확대경>을 또 다른 시각으로 만나보는 공간입니다. 우리 문화가 지닌 다채로운 매력 속으로 지금 들어가 볼까요?

이번호 뮤진확대경은 평양감사 향연도 중 일부를 소개했습니다. 이 그림에는 인물과 향연의 내용이 아주 상세히 표현되었지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그림으로 그린 풍속화에는 일평생 중 기억하고 축하할 만한 내용들을 그린 ‘평생도(平生圖)’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번 호 <유물박사 교실>에서는, 평생도에 포함되었던 <평양감사향연도>와 관련하여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평생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랜 작품인 김홍도의 <평생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 그리고 연회와 의례를 화첩으로 그리던 형식이 18세기 병풍의 유행과 함께 평생도가 되었다는 견해 이 두 가지가 주를 이룹니다. 병풍형식의 평생도는 사람의 일생을 따라 시간순서에 맞게 그려졌으며, 대개 여덟 폭의 병풍으로 만들어졌지만 조선 말기에 들어 공부하는 모습이나 소과응시, 관직에 오른 지 60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회방례(回榜禮), 노년의 무병장수 모습이 포함된 열 폭 혹은 열두 폭으로 그 규모가 커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뮤진확대경>에서 다룬 평양감사(평안감사)의 부임을 축하하는 모습이 이 평생도 병풍에 포함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듯 평양은 임금이 직접 풍광을 병풍으로 그리도록 지시할 정도로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했던 곳이라는 점에서 그 화제(畵題)가 선정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룻밤에 소 수십 마리의 값을 치루며 지낼 정도로 즐길 거리가 풍부했던 평양(평안)의 감사로 부임한다는 것은 당시 선비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이 그림에는 그들의 출세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구경꾼이 모이고 군중이 축하를 하는 규모로 개인의 관직이 중요하다면, 나랏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꿈이었을지 능히 짐작이 됩니다.

이번 <E-특별전>에는 모란문양과 관련된 공예품이 많았습니다. 공예품에는 역시 장인의 손길과 기술이 집약된 꾸밈이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이번 유물박사 교실에서는 <E-특별전>의 공예품들 중 분청사기 모란무늬자라병의 박지기법, 나전칠기 모란넝쿨무늬 상자의 나전기법에 대하여 각각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지기법(剝地技法)은 도자기에 문양을 새기는 기법 중 하나로 태토(胎土)를 사용하여 성형한 분청사기의 겉면을 분장(粉粧) 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문양을 선화로 그린 후 문양을 제외한 부분을 긁어낸 후 그 위에 투명한 회청색의 유약을 발라 문양을 나타내는 기법입니다. 편병(扁甁), 항아리(壺), 합(盒), 대접 등에 이 기법을 사용할 때 표면을 꾸미는 문양으로는 연화문(蓮花文), 연어문(蓮魚文), 모란문 등이 자주 쓰였습니다.
박지기법은 분청사기에만 국한하여 사용하는 기법으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많이 보이며 15세기 중반에 가장 활발히 제작되었습니다. 특히 세종대의 분청사기에서 문양의 생동감이 최고조에 이릅니다. 박지기법이 사용된 도편이 발견된 가마터를 중심으로 볼 때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겉면을 분장할 때 도자기의 겉면에 풀이나 옻을 칠할 때 쓰는 기구인 귀얄과 같은 넓고 굵은 붓으로 칠을 하는 귀얄법을 쓰고 그 흔적으로 표면을 장식한 경우를 귀얄문이라 하고 백토를 묽게 한 것에 기물을 담가 도장한 것을 덤벙문 또는 분장문(粉粧文)이라고 지칭합니다.

조개의 껍데기를 숫돌 등으로 갈아서 여러 두께로 만든 후 나무, 칠기 등에 붙이거나 끼워 넣는 나전(螺鈿)은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 모두 쓰는 한자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개’라는 고유어를 써 왔으며 그 만드는 일을 ‘자개박이’ 또는 ‘자개 박는다’라고 합니다. 나전에 사용하는 조개껍데기는 야광패(夜光貝)와 전복이 주로 쓰이며, 이 밖에도 진주빛을 내는 조개를 사용합니다. 나무바탕을 파내고 감입하는 감입법(嵌入法), 문양대로 아교나 풀로 붙이는 첩부법(貼附法), 나전을 잘게 썰어 뿌려서 부착하는 살부법(撒附法) 등의 방법으로 표면을 꾸밉니다. 이렇게 세 가지 방법으로 표면을 꾸미지만 대개 칠(漆) 위에 자개를 붙이고 다시 칠을 한 후 표면의 무늬가 드러나도록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칠기와 나전칠기라는 단어는 함께 사용하는 예가 많습니다.
나전의 시작은 분명하지 않지만 중국 서주(西周)의 유적에서 발굴된 칠기에 조개껍데기를 붙인 것이 있고, 당대(唐代)에는 성행하여 그 기술이 크게 발달한 것을 유물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나전은 삼국시대에 당나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생각되며 중국의 나전이 송나라 때부터 쇠퇴한 데 반하여 한국은 고려 때 나전기법이 크게 발달하였다는 것을 『고려사(高麗史)』,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고려도경(高麗圖經)』 등의 기록과 유물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예의 표면꾸밈 기법은 유물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양한 물품에 응용되어 디자인 상품이 되곤 합니다. 박물관, 미술관 뿐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는 공예품들의 장식을 볼 때면 그 재료나 기법을 알아보는 즐거움까지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글 |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뮤진 MUZINE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