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은 작은 환경의 변화와 움직임에도 물리적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유물은 존재해 온 세월만큼 예민해져 있기 때문에 공기에 노출되거나 자외선에 직접 닿는 정도의 일상적인 외부자극에도 손상이 우려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나 조사연구를 위해 종종 유물을 이동할 때에는 더 큰 섬세함과 배려가 요구된다. 이번 <박물관人과의 동행> 코너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박진우 연구관님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유물이 박물관을 벗어나 이동하게 되는 경우와 움직임을 준비하기 위해 유물을 분류하는 등 각각의 특성에 맞게 최적의 조건으로 운송하기 위한 절차 등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답변 박물관에 유물이 들어오는 경로는 구입, 기증, 국가귀속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들어온 유물을 단순히 수장고에 놓아두기만 한다면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박물관이 존재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전시를 통해 소장유물을 일반에 공개하고 조사연구 하는 것이고, 이러한 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물관리부의 핵심 업무입니다. 박물관에 들어 온 유물에 관리번호를 주고 보관 위치를 정하고 재질에 따라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고 전시나 조사연구를 위해 수장고에서 나가고 들어오는 과정을 안전하게 하는 것 등이 직접적인 관리라 할 수 있고요, 유물과 관련된 정보나 콘텐츠 관리 등도 최근에 증가하고 있는 업무랍니다.
답변
전시와 관련된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국립박물관 소속 12개 지방박물관 또는 전국의 공·사립, 대학박물관의 전시나 국외박물관의 전시도 있습니다.
소장유물의 운송은 국내 운송과 국외 운송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모든 유물의 반·출입은 수장고 문을 경계로 이루어집니다. 국내의 경우 유물을 빌려 가는 쪽과 협의를 해서 전시품이 확정이 되고요, 빌려 가는 쪽에서 유물에 대한 보험을 가입하면 양쪽이 유물 컨디션을 체크하고 유물을 인계해 줍니다. 이 순간부터 유물과 관련된 책임은 빌려 가는 쪽의 것이 되며 포장도 빌려가는 측에서 하게 됩니다. 이후 포장된 유물을 상자에 담아 운송하는 것이지요.
국외로 반출 될 경우 좀 더 많은 과정이 있습니다. 협의를 통해 전시품이 확정되는 것은 같은데 이후 박물관 내 위원회의 승인에 이어 문화재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전시품 중에 국가지정문화재가 있을 경우 ‘문화재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지요. 승인이 되면 포장을 해서 국외로 반출하게 됩니다. 대부분 항공을 이용하지요. 그런데 국외로 반출될 때 ‘사이테스(CITES)’와 관련된 증명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이테스(CITES)란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보호하자는 것이 취지입니다. 따라서 유물의 재질 혹은 회화 족자의 마구리 등 유물의 부속물에 이런 동식물의 일부가 포함되었다면 이 협정이 만들어진 1973년 이전의 것이라는 증명이 있어야 합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족자의 마구리에 코끼리 상아를 쓴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족자가 외국으로 나갈 경우 이것이 최근의 것이 아니라는 증명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통관수속을 밟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해포를 한 후 또다시 컨디션체크를 하고 전시를 하게 됩니다. 반입의 경우는 반출과 반대의 과정으로 우리박물관에 들어오는 것이죠.
답변
유물을 포장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유물의 재질과
상태입니다. 재질(혹은 종류)에 따라 적용하는 포장 방법이 있으나,
유물의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방법을 응용하게 됩니다. 포장 재료와 방법은 박물관이나 국가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지(韓紙)와 솜 포대기(솜(棉花)을 한지로 감싸 만든 것)로 소장품을 감싸는 방법을 가장 많이 사용하며 경우에 따라 주형(鑄型) 포장과 틀로 고정하는 포장 방법을 사용합니다. 도자기, 토기 등 외형이 단순하고 비교적 단단한 유물에 사용 하는 것이 솜 포대기 포장입니다. 유물을 한지로 감싼 뒤 솜 포대기로 다시 감싸고 끈으로 묶는 방법으로 어지간한 충격에도 견딜 만큼 안정성이 높고 포장시간도 비교적 짧은 포장방법입니다. 돌출된 부분이 많거나 장식이 많이 달려있는 경우 혹은 작은 압력도 견디기 어려운 유물은 주형 포장을 하게 됩니다. 주형 포장은 폴리에틸렌 폼을 소장품의 모양처럼 오려내고 그 안에 소장품을 넣는 것으로, 폴리에틸렌 폼을 정확하게 오려내는 과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석조물이나 대형 금속물 등 무겁거나 부피가 큰 소장 품의 경우 틀을 만들어 고정시키는 방법도 있습니다. 주로 나무를 깎아 고정용 틀을 만드는데 최근에는 3D촬영을 통해 고정하려고 하는 부위의 외형을 도면 으로 만들고 이를 이용하여 정확한 틀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포장된 유물 중 환경에 민감한 유물의 경우 조습제(Artsorb) 또는 제습제(Silica gel)을 함께 넣기도 합니다.
답변 우선 소장유물이 운송 후 안전하게 있을 수 있을지에 대한 평가를 합니다. 관련 전문가가 있는지 온습도를 맞출 수 있는 시설 등 환경적 조건과 보안시설, 인력 등 안전과 관련된 조건은 갖추고 있는지를 봅니다. 유물에 대한 보험은 필수고요. 운송 차량을 이용할 경우 유물상자를 2단으로 쌓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여름의 경우 화물칸에 냉방기를 이용해 온습도를 맞추게 합니다. 운송차량 운행 시 교통법규를 철저하게 지키도록 하죠. 항공기를 이용할 경우 역시 유물상자에 어떤 것도 올리지 못하게 하고, 다른 화물과 섞이지 않도록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송료가 비싸지게 됩니다.
답변 컨디션체크는 유물을 다루는데 가장 기초적인 과정입니다. 컨디션체크 과정에서 유물의 어디가 약한지 어디에 손을 데어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방법으로 포장을 해야 할지, 어디를 특히 조심히 다루어야 할지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고, 유물을 받아가는 측에게도 알려주어 서로 확인하는 것이지요. 해포를 하는 과정에서도 포장 전 혹시라도 유물에 약하거나 불안정한 부분이 있었다면 해포를 하는 순간까지 계속 유물에 아무 이상이 없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답변 벌써 14년 전이네요. 벨기에 브뤼셀에서 전시가 있었는데 전시가 끝나고 우리나라로 유물들을 반입하는 호송을 맡았지요. 유물들을 포장하고 있는데 브뤼셀 측 관계자들이 옆 전시실에서 빈 전시장을 부수는 작업을 하는 겁니다. 다음 전시까지의 일정이 바빠서 작업을 한다는 것이었지요.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지만 소음이 거슬리는 거죠. 사실 유물을 포장할 때에는 집중을 해야 하고 신경이 예민해 지거든요.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얼마 뒤에 또 시끄럽게 작업을 하기에 화가 나고 급한 마음에 “당신들은 예의도 없냐” 등등 한국말로 나무랐더니, 바로 조용해지더군요. 그런데 포장을 마친 후 화물기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 일이 틀어졌어요. 화물기 운항이 취소되었다는 거예요. 황당한 거죠. 유물을 갖고 있는 상황에 일이 계속 꼬이니 마음이 불편해 밥맛도 없었죠. 하루던가 이틀을 기다려 다행히 다른 항공사 항공기를 이용하게 되었어요. 유물에 아무 이상 없이 돌아 왔지만 ‘이렇게 힘든 경우도 있구나’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답변 국보 78호와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입니다. 정말 최고의 소장유물이죠. 이 두 점은 각각 전용 운반상자가 있습니다.1990년대 중반부터 전용 운반 상자를 만들어 사용해 왔지요. 당시에는 전체를 솜 포대기와 순면 천으로 감싸고 이를 나무틀로 고정시키는 방법이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감싸느냐에 따라 나무틀과 맞추기 어려울 때가 있었어요. 우리나라 최고의 유물인데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다루는 과정에서 유물에 무리가 없어야 하고, 누가 보더라도 최고라고 느끼도록 특히 외국 박물관 관계자가 보았을 때에도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유물이구나, 한국 박물관에서 정말 신경 많이 쓰는 유물이구나’라고 생각 할 수 있도록 운반상자부터 특별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늘 그런 고민을 하던 중 2010년에 3D촬영 방법을 이용하게 되었지요. 반가상을 나무틀로 고정시킬 때 고정되는 부위와 정확히 일치되는 나무틀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고 결과가 좋게 나왔지요. 그 외에 상자 안으로 부드럽게 넣고 뺄 수 있는 방법, 상자제작에 쓰인 재료 등 정말 신경을 많이 썼지요. 우리 관 전시실에 반가상을 전시할 때에도 전용 전시 장비를 이용합니다. 유압식 스태커(stacker)를 용도에 맞게 개조해서 무리 없이 안전하게 진열장에 넣고 빼는 장비입니다.
답변 유물을 다루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요. 국립박물관이 60년 넘게 지나오면서 많은 선배님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전해져 온 것이고, 그 과정에 ‘과학적 방법이 사용 되었다기보다 살펴보니 이런 과학적인 것이 있었구나’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우리 박물관은 요즘 말하는 한지의 장점이 밝혀지기 전부터 이를 이용한 포장을 해 왔습니다. 한지는 적당히 부드럽되 미끄럽지 않고 중성을 띠고 있어 유물에 화학적 해를 끼치지 않죠. 최근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경험에 현대 과학의 힘을 이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한지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을 경우에는 적극 사용하고, 더 좋은 재료가 있으면 이를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물을 포장하고 다루는 과정을 가르치는 학과나 과정은 없는 걸로 압니다. 보통 박물관학을 공부하는 과정 중 언급되는 정도지요. 예전에는 박물관에 들어와서 유물관리 쪽 일을 하는 경우가 유일했고요, 요즘은 학예연구직 채용 때 해당하는 학과생 중 개인적 의지로 지원하고 있지요. 다른 분야도 그렇겠습니다만 유물을 다루는 일이 워낙 응용할 것이 많고, 일하는 사람의 적성과 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많아야 하는 분야입니다. 손놀림과 꼼꼼함 등이 이 분야의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