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0호


뮤진 칼럼

새해가 밝았다. 한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을 뚫고 붉은 해가 타오른다. 희망찬 새해를 맞아 새해 소망을 정하는 요즈음, 따뜻한 나눔의 가치를 생각해보며 박물관의 역할을 돌이켜 본다. 이번 호 웹진에서는 관람객에게 지식과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소극적인 역할을 넘어 오랜 종갓집에서 지닌 나눔의 전통처럼 적극적인 문화 나눔 활동을 벌이는 오늘날의 박물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적선 積善

영친 이씨 종택 내 적선 현판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요즘 한창 <종가 宗家>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며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구심점이 되어 온 “종가 宗家”를 조망하는 전시이다. 전시실에 소개된 다양한 유물 중에 유독 눈길을 끄는 유물이 하나 있다. “적선 積善”이라는 두 글자가 크게 적혀 있는 현판유물이다. 선을 쌓는다는 간결한 두 글자가 주는 울림이 유난히 크다. 한 집안 문중의 큰 집에서 대를 이어 내려오는 전통의 가치가 새해를 맞아 마음속에 들어온다. 오늘날 “적선 積善”의 가치는 무엇일까? 수 백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유물을 보여주는 박물관이 실천해야할 전통의 가치는 무엇일까? 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나눔과 배려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치의 나눔, 박물관 교육

적게는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불과 4개월이 안 된 12월 3일에 국립박물관이 개관하였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올바로 해석하고 이를 통해 역사를 해석, 전시, 교육하려는 국립박물관의 활동은 사회구성원에게 우리 문화를 이해시키고, 역사의 정체성 확립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36년 이상 타인에 의해 정치적, 문화적으로 통제받아왔던 당시로서는 국립박물관의 이러한 역할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1949년부터 시작한 미술 강연회는 박물관의 이러한 노력을 반영한다. 학교 교사와 일반인, 박물관 직원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이 강연회는 고고미술과 유물에 대한 연구 성과를 홍보, 공개함으로써 박물관의 활동을 사회교육과 병행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매주 토요일에 실시된 박물관 교육은 대중적이며 공개적인 미술 강좌로 진행되어 일반은 물론 언론, 방송 등을 통해 한국 문화의 특성을 널리 알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박물관 교육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어 일반인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개설되고, 주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문화 강좌나 해외파견원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 교육프로그램이 추가로 운영되었다.

국립박물관은
시간이나 거리 등의 제약으로 박물관을 찾기 어려운 벽지 주민이나 근로자 등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 향수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박물관’(현 ‘찾아가는 박물관’)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 첫 선을 보인 이 프로그램은 대형버스에 주제별 유물과 사진자료 등을 싣고 전국을 찾아다녔다. 6여 년 동안 총 141개소를 찾아 20만여 명을 만난 움직이는 박물관 프로그램은 2005년 한 해에만 전국 40개 지역 546,350명이 참여하는 행사로 거듭나면서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에 기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평소 박물관 방문 및 문화체험 기회가 적은 희망계층을 초청해 박물관에서 전시관람 및 체험활동을 경험하는 ‘행복한 박물관 나들이’ 역시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한 박물관의 노력이다. 저소득층 청소년 및 청각 장애인, 다문화가정, 북한 이주민 등을 대상으로 월 2회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전시해설사가 동행하여 유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 주고 체험활동을 병행하여 우리 문화를 직접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기획되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청각이 불편한 자녀를 둔 가족을 초청해 전문 수화 해설사가 유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특별한 전시해설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여 보다 많은 계층에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베풂과 나눔의 실천, 문화재 기증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 내 기증기부자 명예의 전당

박물관이
지닌 공공성이 점차 알려지면서 개인 소장가들의 유물 기증이 이어졌다. 오랜 전통을 지닌 유물을 보다 안전한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유물 기증은 박물관의 가치에 공감한 개인들의 결심에 의해 이루어졌다. 1946년 금동불 등을 기증한 이희섭 선생을 필두로 2009년까지 240여 명의 소장자가 28,000여점의 소중한 유물을 국립박물관에 기증하였다. 평생을 바쳐 수집한 수집품의 기증을 결심한 소장가 중에는 성공한 기업가나 독지가도 포함되어 있지만,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를 기증하는 가문이나 한국 문화에 관심을 기울인 외국인들 역시 포함되어 있다. 가장 많은 수의 유물을 기증한 분은 동원 이홍근 (東垣 李洪根, 1900~1980) 선생으로 타계 후 고인의 뜻을 받든 유족들이 1980년 약 5,000 점의 유물을 조건 없이 기증한 바 있다. 2003년 3월 46건 101점의 문화재를 기증한 송성문 선생은 국보 4건 4점, 보물 22건 31점을 기증하여 국가지정문화재를 가장 많이 기증한 사례에 손꼽힌다. 국립박물관은 이들의 뜻을 감사히 받아 기증받은 유물을 보관, 연구, 전시하고 있으며, 특히 박물관내 기증문화재 전시실을 상설로 운영하여 많은 이들의 뜻을 기리고 있다.

수천년
전통을 간직한 박물관의 나눔과 베풂에 깊이 공감하는 분들이라면 박물관 자원봉사에 도전해 볼 수 있다. 자원봉사자로의 활동은 국민을 향해 열려있는 박물관에서 우리 문화의 주인이 되는 마음으로 개개인의 애정과 지식을 나누는 활동이다. 박물관 프로그램 운영을 지원해보고 다른 관람객들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박물관 자원봉사는 한정된 시공간 속에서 자신의 경험과 시간을 나누는 특별한 체험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개개인은 우리라는 동질감을 느끼며 함께 겪어온 지난 역사와 문화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전통이란 개인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역사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전통 문화를 함께 나누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이지 추측해 볼 수 있다. 혼자서 온전히 누리는 감상의 즐거움을 넘어 함께 하는 사람들과 그 경험을 나누어 보자. 약간의 관심과 노력으로 애정을 표현하다보면 나눔과 공감에서 체득할 수 있는 새로운 전통이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있는 전통의 체득이야말로 박물관에서 나눌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다.

글 - 국립중앙박물관 문화교류홍보과 MUZINE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