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0호


박물관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전문가 양성 필요... (사)한국박물관협회 윤태석

한국 내 국공사립박물관들이 1천개가 넘어섰다고 한다. 그러나 박물관은 소장품들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박물관으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이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자격요건들을 검토하고 적법한 서류들을 제출하는 등 설립과 등록에 필요한 절차들만 해도 상당하다. 회사들도 설립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법이나 제도의 적용을 받고 인사, 회계 등 경영에 필요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박물관의 제도적 장치를 연구하고 실행해나가는데 필요한 분야가 박물관학이다. 이번 호 뮤진에서는 (사)한국박물관협회의 윤태석 실장님을 만나 “박물관”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물관학을 전공하셧다고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흔치않은 전공이라 생각되는데 어떤 계기로 공부하시게 되셨는지요?

답변 어릴 적 전라남도 나주에서 자란 저는 부모님과 함께 주변의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기회들이 많았습니다. 국립박물관은 물론이 고 법주사, 해인사 등 유명사찰까지 두루 돌아봤었죠. 그리고 모으는 것을 좋아해 중학교 때 이미 유물 수집을 시작했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뒤에 당시 국립광주박물관이 설립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박물관을 자주 들락거리면서 그곳에서 박물관대학 강좌도 듣고 전시도 보고 했었죠. 그러한 이력들이 바탕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미술이론 공부에 뜻을 두어 경희대학교 미술교육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서울에서 미술이론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는데 사범대학 중에서는 경희대학교가 유일하게 미술교육과를 두고 있었고 이론 쪽으로 좋은 교수님들도 계시고 해서 선택하게 되었죠.

그러던 중 학부시절 중앙아시아에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실크로드 관련 유적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우리문화 유산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술사학 박사과정을 수학하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당시 박물관 국고지원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박물관협회로 들어와 일한지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막상 들어와서 일해 보니 박물관과 관련한 여러 가지 현상들이 참 재미있더군요. 그런데 당시 박물관학 관련 서적들은 대부분이 번역서들이었습니다. 제가 박물관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책에 나온 것들과는 한국의 실질적인 상황들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소장 자료는 물론이고 기본적으로 전반적인 문화예술을 대한 인식의 깊이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데, 학교현장에서조차 이러한 번역서를 바탕으로 강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괴리감을 많이 느꼈죠. 그래서 ‘한국식 박물관학’을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박사과정에 들어가 박물관 현장에서의 체험과 우리나라의 박물관 역사, 제도, 박물관 정책구조 등에 바탕을 둔 연구논문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박물관학, 예술경영학 등의 전공자들이 많이 양성되고 있으나 아직 이를 받아줄 수요는 미약합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데 좀더 경쟁력을 기르기 위한 방법을 권유해주신다면?

답변 네 말씀하신대로 우리나라 대학에 관련학과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러한 전공으로 사회진출을 할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는데요. 아무래도 박물관에서 마케팅 전문가나 경영전문가 등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립이나 공립박물관이 민간기업체라고 생각해 봅시다. 잠재 고객을 대상으로 모니터링하고 이를 토대로 상품을 기획생산하고 홍보와 마케팅을 통해 판매하여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모색할 것입니다. 기업에서 경영, 마케팅, 홍보 전문가들은 조직의 생존을 좌우하는 경영의 최 첨병이라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관람객수가 관의 존폐로 이어지는 제주지역 등 일부 규모가 큰 사립박물관에서 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운영이 비교적 안정적인 국립에서도 이제 마케팅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어야 합니다. 이 쪽 전문 인력에게 물꼬를 열어주고 관람자들에게 고품격 문화콘텐츠와 향유기회 확대의 서비스가 전문적으로 실시되어야하는 바램입니다. 또한 현재 공부 중인 분들께는 해외 루브르나 스미소니언 같은 해외 사례들만 생각하지 말고 국내 박물관계의 실상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현재는 물론 미래 박물관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안목도 키워야 합니다. 이를테면 박물관의 조직, 세부적인 업무분야, 소장품 등에 대한 지식, 미래 박물관의 기능의 예측 없이는 뜬 구름 잡는 공부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를 위해서는 박물관현장에서의 경험을 가능한 많이 쌓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박물관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소장품(유물)의 가치에 대한 이해력을 키우기 위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미술사 전공 탓도 있겠지만 나름 인사동이나 옥션 등을 다니며 미술품들을 꾸준히 공부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것들에 노력을 기울이면 자신만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현재보직을 맡고 계신 박물관협회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답변 박물관협회는 1976년에 설립되어 국내 전체 국공사립대학박물관미술관 시설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보통 박물관하면 미술관과는 별개의 기관으로 생각들 하는데 박물관의 개념에는 미술관도 포함될 뿐 아니라 국립과학관이나 63 씨월드 같은 수족관, 수목원들도 박물관의 범주에 들어가 협회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습니다. 저희 협회는 일단은 멤버십으로 계신 박물관장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활동을 첫째로 하고 있고, 정부의 중요한 민간정책의 파트너로서 정책수립이나 의견수렴의 창구 등의 역할을 또한 해오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국고지원사업도 하고 있는데 복권기금 전시지원 사업, 사립•대학박물관 학예인력 지원 사업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 밖에 <전국 박물관인 대회> 운영, 예비학예사교육, 자원봉사교육 등의 프로그램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뿐 만 아니라 ICOM(국제박물관위원회), AAM(미국박물관협회)등과의 국제적 교류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 국공사립 박물관의 개수는 어떻게 되나요?

답변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박물관들만 하면 약 800여개가 됩니다. 그러나 미래창조과학부, 교육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의 타 부처에서 관리하는 박물관들까지 포함하면 국내 박물관 개수는 1,100개가 넘습니다.

최근들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과 국립현대 미술관의 서울관 개관, 한글박물관 준공 등 다양한 종류의 국공사립 박물관들이 많이 설립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문화적 공간의 증가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답변 박물관의 법적 기준이 우리와는 다르기는 하나 이웃인 일본만 해도 5천 여 개가 넘는 박물관들이 있고 미국은 2만 여 개가 넘기 때문에 사실 OECD 회원 국가들과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박물관이 증가추세에 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염려스러운 부분은 이들이 제대로 대중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활동이 미흡할 때에는 결국 국민들의 짐으로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일본은 일부 공립박물관들을 독립운영기관으로 전환시키기도 했죠. 국립박물관 입장 무료화, 야간개장 운영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박물관을 가치재로서 보다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의미 있는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물관의 문만 확대해서 열기보다는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켜 관람객들을 끌어들이는 방안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도 기존보다 진일보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전국 박물관 미술 지도
  • 2013 박물관 미술관 100번가기 포스터
  • 2013년 박물관주간 포스터

국립박물관의 무료입장과 관련해서 일부 사립박물관들이 운영상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답변 그 주장에 대해 100% 동의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관람료를 무료로 한다고 관람객이 대폭 증가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한 사실은 통계상으로도 수치가 나와 있지만, 타 국외박물관들처럼 관람료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무료입장으로 인한 관람객 증감에 끼치는 영향은 덜할 수밖에 없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관람료보다 박물관이 제공하는 콘텐츠-전시내용, 홍보 및 마케팅, 프로그램 내용 등-가 관람객 유입에 더 지대한 영향이 있다고 봅니다. 국립박물관의 무료입장화로 인해 곤란해졌다는 사립박물관들의 주장이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지 그것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지죠. 물론 대규모의 국립박물관들이 무료입장을 실시함으로서 소규모의 사립박물관들은 사기가 저하될 수밖에 없고 실재로도 관람객들이 국립박물관과 비교하며 불평하는 사례들이 있다고 듣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무료입장에 대해 염려스러운 부분은 이로 인해 우리 문화유산의 인식적 가치가 저하될 수 있으며, 문화향유태도의 질 저하, 문화향유는 공짜라는 인식의 확산 등이 나타나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직업상 국내외 다양한 박물관들을 접해보셨을텐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 혹은 우리가 이러한 점은 꼭 배웠으면 좋겠다하는 
                    곳이 있으셨나요?

답변 국외박물관들 중에는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 역사도 오래되고 문화적인 가치나 이해도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좋은 사례들이 많은 것을 잘 아실 것 같아 국내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모두들 알다시피 박물관을 만드는 목적은 되도록 많은 관람객들을 끌어들여서 소장품을 보여주기 위함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박물관들이 마케팅에 좀 더 신경을 써서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장치들을 가급적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한 사례로 소개하고 싶은 곳이 경기도 포천에 소재한 ‘허브아일랜드’입니다. 그 곳에 갔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관람료로 3천원을 내면 박물관의 문화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쿠폰이 주어집니다. 사실 이 돈으로만 살 수 있는 상품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했을 때 관람객들은 무료로 박물관에 입장한 것 같아 기분이 좋고 박물관입장에서는 이로 인해 문화상품을 관람객들에게 노출시켜 판매율을 높임으로서 수익원 창출로 이어지는 일종의 마케팅 전략인 셈이죠. 이러한 마케팅 기법의 창안은 국립박물관과 다른 사립박물관들도 배웠으면 합니다.

혜곡 최순우 기념관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관람객들

혜곡 최순우 기념관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관람객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소장품에 대한 고정관념을 달리 해서 이제는 유물의 가치를 새로이 획득하는 방향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일부 국내사립박물관들의 소장품들을 보면서 ‘이런 것도 유물이 될 수 있구나’하고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릉의 ‘컵 박물관’이나 ‘도량형박물관’, ‘미용박물관’등이 그러한 곳들입니다. 그 밖에는 해설프로그램이 강한 박물관들도 있는데 ‘미리벌민속박물관’, ‘만해기념관’, ‘제주민속박물관’ 등이 그러한 곳입니다. 아무래도 규모가 작고 박물관 설립자가 한 점 한 점 본인이 피땀 흘려서 수집을 해왔기에 직접 관람객들을 마주하며 설명을 해주시기 때문에 상당한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박물관협회에서 해야 할 일도 많아 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답변 지금까지 박물관협회라고 하면 흔히들 박물관에 국가의 돈을 지원해주는 곳이라고만 생각을 하는데 이제는 저희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국고 지원을 만 10년 동안 해왔지만 이것이 박물관 발전에는 그다지 많은 기여를 해주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간의 국고지원이 박물관들의 자생력을 키워주고 공익적인 기능을 가치관이나 철학으로서 승화시키는 부분은 많이 부족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은 박물관들이 독립적으로 각자 잘 발전시켜나가도록 견인해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보는데요. 박물관장님들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도 그중 일부인데 스마트뮤지엄, 문화다양성 그리고 홍보와 마케팅, 기획력, 회계 등 박물관인들이 알아야 할 문화적 트렌드나 부족한 업무능력을 배양시키는 프로그램들이 우선 운영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외에 국내 전체 박물관과 관련 산업이 참여하는 박물관엑스포도 계획 중이며, 한국박물관협회 40년사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 2011년 큐레이터 워크샵 프로그램
  • (사)한국박물관협회 주관 2010부천무형문화엑스포

개인적으로는 박물관 연대표와 박물관 인명사전 등을 집필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인명사전 같은 경우는 그동안 예전 관장님들, 박물관 설립자들, 정책관련 학예연구사, 정부관료 등을 총망라해서 정리할 예정입니다. 그 밖에는 제 논문집과 뮤지엄 컬럼집 등도 출간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및 정리-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뮤진MUZINE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