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50호


전통과 현대의 만남

만남에 앞서

첫만남

집에서의 생활을 디자인 하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 닥치던 겨울. 하지훈 교수를 찾아갔다. 앞서 잡힌 회의가 늦어져서 잠시 머물렀던 그의 작업실은 엄청나게 다양한 물건들로 꽉 차 있었다. 각종 연장 도구가 벽면을 가득 메운 아래로 작품 몇 개가 보였다. 나무와 금속이 혼합된 디자인 제품이었다. 2012년 덕수궁 프로젝트에서 덕홍전을 가득 채운 크롬도장의 좌식의자와 박물관에서 마주쳤던 나주 소반을 변형시킨 목가구가 동시에 떠올랐다. 재료와 디자인이 상이한 작업들을 동시에 접하며 좀처럼 한눈에 짐작하기 어려운 그의 작품들 사이에 공통점을 찾아보려 할 때, 서글서글한 표정의 그가 나타났다. 인터뷰 장소를 찾아 이동하는 길에 들렀던 목공실기실에서는 더욱 다양한 재료와 도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디자이너 하지훈과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그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를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새로운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호칭에 대한 질문을 드렸다. 공예가, 작가, 디자이너 등등의 호칭 중 마땅한 명칭이 무엇인지 딱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볍게 건넨 질문에 서슴지 않고 그가 택한 대답은 디자이너였다. 그것도 가구 디자이너. 그리고 부가설명이 이어졌다. 가구(家具)란 집에서 사용하는 기구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책상, 장롱 뿐 만이 아니라, 조명이나 각종 소품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므로, 작가의 개성과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이 무한히 발휘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했다. 표현에 있어 열려있으면서 실생활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예술과 산업의 경계에 위치한 분야인 가구디자인. 그리고 가구디자이너는 새로운 관심과 시도로 당신만의 작업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하지훈 교수 역시 그런 가구 디자이너였다.

전통과 현대

가구 디자인에 대한 거침없는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작업을 하는데 있어 재료와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라는 설명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시대를 반영한 재료와 기술이 작품에 적용되어야 하며, 단순히 눈에 보이는 외관과 형태를 떠나 왜 만드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 작업 과정이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전통과 현대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그는 전통을 냉정하게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래된 유물이 지닌 형태에 갇힘이 아니라, 그 구조와 비례를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술로 가공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좌식생활에서 사용했던 소반을 입식생활에 맞게 조절한 작업이나, 이전에 없던 금속가공 · 도장기술을 적용한 작품을 내 놓는 것이 디자이너 하지훈이 생각하는 전통의 현대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제안하는 방법이었다

새로움에 대한 도전

하지훈 디자이너의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유독 다른 작가들과의 협업작품이 눈에 띈다. 특히 전통공예 기술 보유자 분들과의 협업 경력이 많다. 매듭장, 자개장, 채상장 등과의 협업은 1+1이 새로운 창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 기술과 아이디어의 만남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작품으로 재탄생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전통과 기술을 하나의 콘텐츠로 인식하고 재료와 기술의 한계에 과감하게 도전한 그의 용기에서 비롯될 수 있었다. 장인들이 지닌 재료와 기술에 대한 이해가 디자이너 하지훈의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평소 작업을 진행할 때 남의 시선과 익숙한 외관을 의식하지 않고 결과물이 지니는 용도와 목적에 집중한다는 그의 설명이 어렴풋이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가구는 실용적인 기능과 감상을 위한 조형의영역에 걸쳐 있으므로 작품의 중심이 그때마다 옮겨갈 수 있다는 설명 역시 그의 작업들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훈의 문화재

사층사방탁자 조선19세기 국립중앙 박물관

뮤진의 공통질문을 드렸다. 우리 문화재 중 가장 좋아하는 문화재에 대한 질문이었다. 개방적인 사고의 하지훈 디자이너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아주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조선시대 목가구. 지역에 따라, 용도에 따라 다양한 조선 목가구 전체는 하지훈 디자이너의 아이디어 보고였다. 조선 목가구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오래도록 전달하고 싶다는 그는 목가구 중 그래도 하나를 추천해 달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사방탁자를 언급했다. 그는 디자인의 완성을 보여주는 것이 조선시대 사방탁자라고 생각한다. 덜어내고 덜어내서 더 이상 덜어낼 수 없는 완성체. 요즘의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미니멀리즘의 정수라고 부를 수 있는 사방탁자는 마이너스의 미학을 보여주며 그 조형과 기능 역시 완벽하게 조화되어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공간 속에 두고 그 자체로 감상할 때에도, 탁자 위에 다른 물건을 올리고 수납할 때에도 무엇 하나 거스르는 부분 없이 한데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을 인터뷰 시간동안 하지훈 디자이너가 전해준 메시지는 그의 작품 이미지와 어우러지며 아직까지 마음 한 구석에서 메아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예전과는 생활양식이 완전히 달라진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사람으로서 전통과 유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전통의 현대화를 생각하기 전에 나를 둘러싼 일상 소품들은 어떤 모습인지 한 번씩 돌아보고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의 생활은 어떠신지요?

글 -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뮤진 MUZINE 편집실 / 촬영 - 아베바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