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49호


뮤진 확대경

<뮤진 확대경> 코너에 대해
국립중앙박물관 뮤진은 2013년 새 개편을 맞아 <뮤진 확대경> 코너를 신설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 하나를 선택하여 집중 탐구해 보는 <뮤진 확대경>은 초 근접 촬영한 실사 이미지를 통해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유물의 세밀한 부분까지 상세하게 관찰해 보는 코너입니다. 뮤진에서 준비한 확대경을 통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의 유물 탐구 기회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 바위산 너머
  • 이번 뮤진의 집중탐구 유물은 무엇일까요?
  • 이인문필 강산무진도
  • 깊은 산 속에서 만난 폭포와 괴석
  • 자연과 어우러진 사람들
  • 자연을 극복한 사람들
  • 자연과 공존하는 문명
  • 다시 찾아온 평화
  • 고요한 마무리

이번 호 뮤진 확대경을 통해 본 유물은 무엇일까요?
평소에 접하기 힘든 정밀 사진을 통해 우리 유물이 지닌 숨김과 드러냄의 매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바위산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이어주는 도르래 너머로 산봉우리가 중첩되어 보입니다. 곧은 직선을 올라가는 문명의 바구니처럼 오래된 소나무 두 그루가 뻗어 올라갑니다. 말과 나귀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마을 어른들이 한담을 나누는 전경을 지나면 곧 다시 잘 생긴 바위산이 나타납니다. 큼지막한 바위 덩어리가 자체로 산봉우리를 이룬 것 같습니다. 마치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문처럼 입을 벌리고 버티고 선 바윗돌 위를 나귀가 뛰어 올라가고, 봇짐을 짊어진 이가 힘들게 뒤따르고 있습니다. 푸른 침엽수 밭이 발아래 있는 것으로 보아 꽤 높이 오른 모양입니다. 풍경이 지속될수록 바위산의 모습은 점점 기괴해져가고 나무 둥지 같은 기암괴석이 이어지며 험준한 산속으로 길을 인도합니다. 바위 틈 사이로 군데군데 마을을 이룬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시켜줍니다.

  • 뾰족하게 각진 모습의 바위가 유난히 모여 있는 곳 사이로 장대한 폭포 두 줄기가 보입니다.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가 뽀얀 물보라를 일으켜 주위를 뒤덮습니다. 폭포에서 나는 굉음이 온 산에 메아리치는 것 같습니다. 폭포의 물이 떨어지는 곳은 거대한 호수를 이룹니다. 호수는 자연 그대로의 깊고 푸른 물색을 가지고 있겠지요. 폭포수 앞으로 늘어진 가지 덩굴이 호수위에 일렁이며 시선을 붙잡습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처럼 하늘에서 솟아나 거꾸로 매달린 듯 바위를 지나면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험준한 산이 시작됩니다. 갑자기 오래된 고목 같은 모습의 괴석들이 솟아오릅니다. 세찬 비바람에 깎인 천혜의 조각은 기이한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단단함과 무름이 동시에 공존하는 괴석 너머로 거대한 바위산이 중첩되어 이곳이 깊은 산중임을 암시합니다. 아마도 화면 전체에서 가장 깊은 산중을 묘사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 깎아지른 듯 높은 돌산을 지나면 사선으로 질러가는 거대한 바위덩이가 나타납니다. 나무 한 그루조차 뿌리내리기 힘들어 보이는 척박한 모습의 바위는 화면을 가득 채우며 감상자의 시선을 차단합니다. 이전에 펼쳐진 경관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짐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바위 너머에는 평화로운 마을이 펼쳐져 있습니다. 기와집이 몰려있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나귀를 타고, 짐을 메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보아 한낮의 모습을 묘사한 것처럼 보입니다. 높은 고루를 통과하며 들어서는 마을 뒤로는 뒷산에서 흘러나오는 큰 물줄기가 휘돌아갑니다. 뒤로 펼쳐져 중첩된 산의 모습과 세차게 흘러가는 물의 모습이 어울려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합니다. 그림 속에 사람들도 명당자리에 정자를 짓고 운치를 즐겼던 것 같습니다.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눈앞에 펼쳐진 경관을 마음껏 즐기는 사람들의 여유가 전해집니다.

  • 마을 사람들이 짐을 싣고 가는 방향을 따라가자 낭떠러지 같은 바위틈을 연결한 돌다리가 나타납니다. 나무와 돌을 섞어 만든 다리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환경을 극복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멀리 펼쳐지는 뒷산의 운무를 가로질러 다리를 건너면, 좁은 길이 이어지며 또 다른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이때 또 하나의 바위산이 나타나는데 사람 손이 전혀 닿지 않은 듯 뾰족하게 깎아지른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군데군데 나무도 자라고 표면에 패인 곳도 있을 것 같은 바위산입니다. 하단부에는 돌을 쪼아 계단을 만들고 건물도 지었습니다. 당간지주와 당간처럼 보이는 높은 대가 앞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설일 것 같습니다. 바위절벽 사이로 인간이 자연을 극복한 또 하나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 시선을 왼쪽으로 옮기니 더 많은 건물들이 나타납니다. 탑처럼 보이는 높은 건물과 산성처럼 보이는 누각이 작은 바위 위로 솟아오르고, 회랑과 누각이 연결됩니다. 바위의 모습을 따라 몇 채의 건물이 이어지면 돌로 쌓은 성곽이 나타납니다. 바위산 중턱에 쌓아올린 돌담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내부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방어막입니다. 거친 환경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보호막 같기도 합니다. 담 너머에는 많은 수의 민가가 옹기종기 붙어있습니다. 멀리 이어지는 바위 봉우리 사이에 본거지를 마련하고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력이 스며들어 있는 모습입니다. 바위 너머에는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데군데 높인 커다란 바위 사이를 세차게 흘러가는 물줄기는 주변 사람들의 젖줄일 것 같습니다. 물길 주위로 마을이 들어서있고 돌다리도 생겼습니다. 하나둘 힘을 모아 사람들이 이룩한 문명이 자연과 더불어 펼쳐집니다.

  • 갑자기 시선이 탁 트입니다. 이전까지 눈앞을 가로막았던 거대한 산줄기가 사라지고 넓은 평지가 나타납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평원이 아니라 고요한 수면입니다. 평화롭게 정박한 배들이 한가롭게 떠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주한 모습입니다. 따뜻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마을에는 사람들의 활력이 차오릅니다. 길게 이어진 다리도, 고즈넉한 낚싯배도 화면의 왼쪽을 향합니다. 왼쪽에는 반대쪽보다 더 야트막하고 친숙한 산이 보이는데 마치 분지로 둘러싸인 것처럼 아늑해 보이는 마을의 모습이 한층 더 평화로워 보입니다. 왼쪽 산을 넘어가니 점점 평원이 넓어지고 이제 먼 산에서 중첩된 산봉우리도 점점 야트막하게 변해갑니다. 봉우리 사이에 피어오른 안개가 풍경을 아늑하게 감싸 내립니다. 무수히 많은 민가와 사람과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평화로운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 화면의 끝부분은 시작과 마찬가지로 짙은 운무에 싸여있습니다. 이제껏 살펴본 산과 바위, 강줄기와 인간의 생활이 마치 꿈처럼 조용히 사그라지는 모습입니다. 풍경을 묘사한 먹의 농담도 점차 흐려지며 아스라한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넓고 고요하고 몽환적인 마지막 화면은 길었던 지난 여정의 여운을 남깁니다. 빈 공간과 다름없는 마지막 화폭 끝에는 색이 바래 진 낙관이 남아 이 그림이 견뎌온 지난 시간을 담아냅니다.

이번 뮤진 확대경에서 관찰한 유물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江山無盡圖’의 후반부입니다. 기나긴 여정을 마무리한 소감이 어떠셨는지요. ‘끝없이 펼쳐진 강과 산’ 이라는 그림제목의 뜻처럼 10m에 가까운 길이동안 자유로운 시점변화, 변화무쌍한 화면 구성, 화려한 필묵 구사 등으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대작입니다. 대범함과 꼼꼼함이 한데 어우러져 대체 불가능한 감동을 선사하는 이 그림에서 이인문이라는 화가가 꿈꾼 인간과 자연의 이상향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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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MUZINE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