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49호


여행, 길을 떠나다

길을 떠납니다. 진리를 찾아 길을 떠나고, 임무를 위해 길을 떠납니다. 좋은 풍광을 찾아 여행을 가기도 하고 정처 없이 발길 닿는 곳을 따라 길을 걷기도 하겠지요. 이번 호 뮤진에서는 ‘여행, 길을 떠나다’를 주제로 여행과 관련 있는 유물들을 모아 E-특별전을 준비했습니다.
길 위에서의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발걸음에 맞춰 숨을 쉬다보면 낯선 풍광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해볼 수 있겠지요. 이제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어 보세요. 선조들의 여정을 따라 길 위의 여행을 시작해 봅니다.

진리를 찾는 여행

왕오천축국전

6,000여자 남짓의 글이 적혀있습니다. 한 줄에 30자씩 총 227행의 한자로 이루어진 이 두루마리에는 다섯 천축국(天竺國)에 대한 여행기가 들어있습니다. 배를 타고 시작한 여행기는 육로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4년여의 시간 동안 보고 겪은 풍광과 풍습을 담아냈습니다.
신라시대의 승려 혜초(慧超, 704~787)가 쓴 것으로 알려진 『왕오천축국전 往五天竺國傳』입니다. 한국 최초의 해외 여행기라는 평가를 받는 이 책은 혜초가 직접 여행했던 40여개 지역에 대한 기록입니다. 723년 중국 광저우에서 출발하여 727년 11월 쿠차(庫車, Kucha)에서 마무리된 청년 혜초의 글은 석가모니의 여정을 따라 불법을 구하는 구도(求道)의 길을 보여줍니다. 8세기에 인도 및 중앙아시아를 두루 여행한 혜초는 발길 닿은 곳의 자연지리, 인문지리, 풍습, 종교 등에 관한 기록을 전하며 진리를 향한 기나긴 여정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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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경치를 만난 사행

사로삼기첩

나라의 외교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길을 떠난 신하가 있었습니다. 보통 200~300명으로 구성된 사절단은 왕복 다섯 달 정도 소요되는 멀고도 험한 길을 다녀옵니다. 길은 비록 고되고 힘들지만 국내 여행조차 쉽지 않던 시기, 외국을 경험하고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사행을 간절히 소원했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72세의 나이로 평생을 고대했던 중국 사행을 다녀온 강세황이 남긴 <사로삼기첩槎路三奇帖>입니다. 사행길에 만난 세 가지 기이한 경관이라는 의미를 지닌 <사로삼기첩>은 노년의 문인이 중국 땅에서 만난 생경한 경치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산해관과 북경 사이에 위치한 계주의 '계문연수 薊門煙樹', 북경 이화원 인근의 '서산 西山', 백이숙제의 묘가 있는 '고죽성 孤竹城' 등이 그려진 화첩의 장소는 사행을 떠난 사신들의 기록에서 자주 언급되는 곳이자, 사신일행이 빼놓지 않고 들렀던 명소였습니다. 1784년 겨울의 풍경을 담아낸 화폭에는 고된 여정을 잊고 눈앞의 풍광을 기억에 새기려는 화가의 열정이 함께 녹아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여행

해산첩

드넓게 펼쳐진 일만 이천 봉우리가 붉게 물들어갑니다. 기암괴석 바위 틈 새로 손짓하는 빨간 잎사귀에 눈이 시립니다. 단풍이 아름답다 하여 ‘풍악산 楓嶽山’이라 불리는 금강산의 가을입니다.

1797년 가을, 친구와 함께 금강산을 찾았던 화가는 눈앞에 펼쳐진 절정의 가을 풍광을 유탄(柳炭)으로 스케치했습니다. 그리고 1년 반의 시간이 흐른 후, 당시의 가을을 회상하며 봄부터 여름까지 총 6개월 걸쳐 그림을 완성해냈습니다. 1799년 8월에 완성된 선비화가 정수영(鄭遂榮, 1743~1831)의 <해산첩 海山帖>입니다. 지리학자 집안 후손인 정수영은 남다른 관찰력과 표현력으로 내금강 아홉 점, 외금강의 산 다섯 점, 해금강의 바다 네 점 등을 두루 여행하고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바다(海)’와 ‘산(山)’이라는 제목을 붙인 화첩에는 여행의 여정과 경관에 대해 쓴 글을 함께 수록하여 자신만의 기억을 간직한 여행첩을 완성하였습니다. 예로부터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던 금강산은 솜씨 좋은 화가를 만나 운무와 단풍에 둘러싸인 명산의 면모를 오래도록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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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준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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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정신관세음보살대라나경

몸에 지니는 작은 부처

길을 떠날 준비를 합니다. 하루가 걸리는 여정이든 한 달이 걸리는 여정이든 떠날 채비를 하는 마음은 설레고 또 두렵습니다. 일상에서 마주하지 못한 풍경을 만나고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길에서 때로는 예측하지 못한 위험을 만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갖가지 위험으로 부터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는 믿음의 징표를 지니고 떠납니다. 먼 길을 가는데 짐이 되지 않게 작고 가벼운 소재면 더 좋을 것 같습 니다. 혹시나 잃어버리지 않게 끈으로 묶을 수 있는 고리가 있으면 더 유용하겠지요.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 호신용으로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었던 불감과 불경을 소개 합니다. 어른 새끼손가락 길이만한 금제 불감 속에는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 음보살상이 들어있습니다.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도금 경갑 속에는 일가족의 안위를 비는 다라니경이 들어있습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귀한 재료에 정성을 다해 제작한 호신품들입니다. 품에 지니고 길을 나서면 어떤 길을 가더라도 든든한 마음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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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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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 MUZINE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