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49호


뮤진 칼럼

어느덧 창틈으로 불어드는 찬바람이 겨울이 가까워졌음을 알려주는 요즈음, 일교차가 큰 날씨 탓에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짙어지고 대기는 점점 건조해져간다. 이처럼 급격히 생활환경이 변하는 환절기에는 사람들도 감기가 드는 등 탈이 나기 쉽다. 그렇다면 오랜 세월을 거치며 노후화된 유물들의 건강은 어떨까? 유물들이 건강하게 보존될 수 있는 환경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이번 호 뮤진에서는 유물이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는 ‘보존환경’에 대해 알아보았다.

유물도 환경이 중요하다.

유물
들이 처음에 박물관에 들어오면 어디에 머물게 될까? 전시가 끝나면 유물들은 어디로 옮겨질까?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박물관에는 수장고라는 거대한 유물보관용 창고가 존재한다. 수장고에서 유물들은 편히 휴식을 취하며 성치 않은 곳도 치료받고 전시를 위한 최상의 상태가 유지될 수 있도록 보호받는데, 이러한 관리를 위해서 먼저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보존환경이다. 사람이 생활하기 위해서도 적절한 온도와 습도, 깨끗하고 무해한 환경 등이 중요하듯이 유물들에게 적절한 보존환경 또한 그것들의 아름다운 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나

적게는
수백 년, 많게는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유물이 후대에까지 잘 전해지기 위해서는 적절한 온·습도 조절 등으로 최적의 보존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보존환경은 대상 유물의 재료성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유물을 안전하면서도 최상의 상태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재료는 도자, 금속, 목재, 섬유, 지류 등으로 구분하는데, 더 구체적인 성분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현미경 관찰, X-선, 적외선 같은 특수 광선을 조사하여 과학적인 분석을 하기도 한다. 또한 유물의 재료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유물의 제작 방법이나 과정 등에 대해서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좋다. 다만 유물은 오랜 시간으로 자칫하면 손상을 입기도 쉽고 분석을 위해 파손할 수 없는 대상이므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이에 적합한 과학적 방법들을 적용하여야 한다.

이런것들은 해로와요!

우리
주변에 오래된 물건들이 빛에 바래거나 녹슬거나 부서지거나 하여 대부분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기 힘든 것처럼 유물 역시 오랜 세월을 견뎌온 만큼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손상될 수 있는 예민한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 마모와 풍화 등의 물리적 요인은 물론, 녹슬거나 하는 재료의 산화나 유기질 재료의 분해와 같은 화학적 요인, 곤충과 곰팡이 등에 의한 미생물학적 요인 등이 대표적인 손상원인이다. 뿐만 아니라 미세먼지처럼 공기 중에 떠다니는 오염물질이나 내장용 건축재 등에서 발생하는 포름알데히드 같은 유해성분 역시 작품을 손상시킬 수 있다. 방충작업이나 밀폐된 공간에 살충, 살균 가스를 주입하는 훈증소독, 유해가스 측정 등의 작업은 위와 같은 요소로부터 유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들이다. 이만큼 유물에 해를 끼치는 위험요소들은 도처에 있어 마치 아기를 다루듯이 유물을 둘러싼 모든 환경적 조건들이 적절한지를 항상 체크해야하는 것이다.

쾌적하고 뽀송뽀송하게

여름
장마철 높은 온·습도에 의한 곰팡이 등으로 식중독이나 전염병이 발생하듯이 유물의 보존환경 또한 온도와 습도가 높아지면 유물자체가 녹슬거나 박테리아, 벌레 등의 번식에 좋은 여건이 되어버려 부패 등의 손상이 유발된다. 반대로 습도를 너무 낮추게 되면 작품의 건조를 유발하여 안료가 떨어져나가거나 나무 등에서는 뒤틀림, 균열 등의 변형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유물의 보존 시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정 습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던 수장고에서 전시실로 옮겨졌을 때 온도차가 많이 나면 전시품이 적응을 못해 표면이 결로될 위험이 있다. 전시실에 자동온도조절기나 습도조절기가 작동되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다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유물이나 작품의 재질에 따라 온·습도의 기준이 다른데 대개의 경우 온도는 20∼21도, 습도는 55% 정도로 권장되나, 고온다습에 민감한 필름류의 경우 온도는 10도, 습도는 30~45%가 적정하다고 한다.

빛에도 민감해요

가끔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 중에는 전시실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작품 감상을 제대로 못했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재질에 따라서 일부 전시품들이 조명에서 나오는 자외선에 손상될 수가 있어 이에 대한 배려로 조도(조명의 밝기)를 낮추었기 때문이다. 물론 박물관에서 조명은 작품 보호 뿐 아니라 작품 감상, 관람객의 안전, 전시 분위기 연출 등 복합적인 요인을 종합적으로 배려하여 설치된다. 일반적으로 조도는 보존환경에 있어 다른 원인에 비해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염색된 섬유질 작품이나 지류, 일부 회화 및 사진 작품 등은 조명에서 발생하는 파장 400mm 이하의 자외선에 의해 퇴색을 일으킬 수 있으며, 칠기 등의 공예품은 광원으로부터의 방사열에 의한 건조에 의해 손상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박물관 유물을 마주하며

박물관
에서 만날 수 있는 문화재는 선조가 만들어 현재까지 전하는 문화적 대상물이다. 때문에 우리는 과거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역사적 증거품이자 예술적 감상의 대상이 되는 유물을 잘 보존하고 후대까지 물려주어 미래를 풍요롭게 만들 책임을 지고 있다. 문화재를 둘러싼 환경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유물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좋은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시키는 활동은 박물관 직원들의 노력과 관람객들의 노력이 합쳐져야 완성될 수 있다. 전시실의 온도가 불편하다고, 조명이 어둡다고 투정해본 적은 없었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차분한 환경에서 조용하게 관람하는 우리의 작은 협조가 오랜 시간을 응축하고 우리 앞에 선 문화재의 보존에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