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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발굴한 유물이 전시되거나 교과서에 실린 것을 봤을 떄 보람을 느껴요 -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학예연구관 홍진근

땅 속에 수천 년 혹은 수만 년 동안 잠자고 있던 오래된 물건이나 유골을 발굴하여 우리가 알기 힘든 시대의 흔적을 발견해나가는 사람들...고고학자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집트의 미라도 선사시대 돌도끼도 전시장에서 구경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 구경은커녕 그런 시대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수사요원처럼 과거의 자취를 쫓으며 추리해나가는 고고학자들의 직업이 주는 경외감 때문인지 추리소설이나 판타지영화 등에서도 그들은 곧 잘 주인공으로 등장하곤 한다. 이번 호 뮤진에서는 1997년부터 올해까지 한국-몽골 공동학술조사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여 유적 발굴조사 작업을 해 오신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홍진근 연구관님과 몽골 발굴조사와 고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국립박물관에서는 언제부터 근무사셨나요?>

답변 1992년도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계약직 연구원으로 시작하여 기능직 공무원을 거쳐 1996년도에 학예연구사가 되어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에서 근무하였으니까 국립박물관에 근무한 것이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박물관에서 일하시게 된 꼐기가 있나요?>

답변 경상북도 고령군이 제 고향인데요, 고령군은 대가야의 도읍지로서 가야시대 주요유물들이 출토된 고분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물론 제 전공이 고고미술사인 까닭도 있지만, 어렸을 적부터 주변에 발굴현장들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고고학자로서의 꿈을 키워왔고 이러한 환경적인 요인이 저를 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이끌어준 중요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발굴조사를 다니셨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였나요?>

답변 역시 몽골 발굴조사가 힘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몽골간의 공동학술조사는 1997년도부터 시작되어 최근까지 약 17년 동안이나 이어져온 장기간 프로젝트입니다. 이를 위해 매년 몽골에서 짧게는 1달, 길게는 2달 반 정도까지 머물며 발굴조사를 했는데, 작업을 벌인 도르릭나르스 유적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도 12시간가량이나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동안 그곳에서 새로이 발굴·조사된 유물과 자료들을 몇 차례 전시·공개하고 결과들을 발표하는 등 꽤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몽골 발굴조사 당시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답변 우리가 보통 몽골하면 초원에 말 달리는 유목민을 생각하는데 역시나 그곳에서 아침, 저녁으로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라고는 끝없이 펼쳐진 대초원에 산이라고 해봐야 아주 야트막한 언덕 정도였죠. 복잡한 대도시를 떠나 이런 곳에 있다 보면 외로움도 밀려들기도 합니다. 이동 중에는 차안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고 물이 귀해 한 컵의 분량으로 세안과 양치질을 동시에 해결한 적도 있고 먹을 것이 부족해서 곤란을 겪은 적도 있습니다. 최근 조사한 도르릭나르스 흉노무덤은 15미터(건물 4층 높이)나 되는 깊이의 고분 안에서 발굴 작업을 하기 때문에 만약의 경우 붕괴 등의 위험을 경계하면서 늘 긴장감 속에 일해야 했죠. 그런 가운데서도 마을주민들과 친해져서 함께 축구, 배구 등 운동을 하기도 하고, 힘든 작업과정 중에서도 몽골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초원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이 위로가 됐었죠.

한·몽 공동학술조사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몽 공동학술조사는 1997년부터 오랜 시간동안 진행해온 발굴조사 프로젝트입니다. 또한 국립박물 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외국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한 예이기도 하죠. 흉노는 기원전 3세기말부터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수백 년간 몽골 고원을 중심으로 활동한 유목민 집단이자 최초로 초원에 이룩한 통일국가입니다. 그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은 몽골을 중심으로 주변 중국과 러시아지역에 걸쳐 많이 분포해 있지만 중국인이 쓴 역사책에는 왜곡된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프랑스, 미국 등 세계 10여 개 이상의 연구단이 몽골과 공동연구를 진행하여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흉노의 문화상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도르릭나르스 흉노무덤에서 흉노 최고 귀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목관의 발굴은 그들의 문화적 수준을 가늠케 하고 보존상태가 비교적 괜찮은 인골은 흉노인의 신체적 특징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죠. 또한 그들의 기마문화는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조사결과들을 통해서 우리의 고대문화와의 연관성 등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몽골의 발굴조사는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봅니다.

연구관님께서 보시는 고고학의 학문적 의미 또는 역할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답변 고고학은 고대 사람들이 남긴 유적이나 유물을 통하여 과거 인류의 문화와 살아온 모습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학문이죠. 예를 들어 우리 박물관이 전시하고 있는 그물무늬가 찍혀진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편을 통해서, 빗살무늬토기가 지닌 여러 가지 모양, 무늬 등 예술성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먹거리를 저장하기 위해 그릇을 만들고, 여러 명의 사람들이 그물을 가지고 고기잡이를 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지거든요. 이렇듯 후대에 남겨진 물건이나 흔적들을 고고학자들이 조사·연구하여 고대 사람들의 “말 없는 역사”를 밝혀냄으로서 이를 기록하고 후세에 남기는 작업이 이뤄질 수 있는 겁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관학팀에서' '보존관학부'로 승격이 되었씁니다. 남다른 감회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답변 네. 지난 7월에 금관총에서 출토된 고리자루큰칼에 새겨진 ‘이사지 왕(이斯智王)’이라는 명문이 발견되어 신라 금관총의 주인을 추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라 초기 고분 중 무덤의 주인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최초로, 앞으로 연구가 계속 이뤄져야 하겠지만 이번 발견은 신라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답변 <인디애나존스> 같은 영화를 보고 고고학자를 꿈꾸는 학생들도 있는 것 같은데, 고고학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학문입니다. 발굴조사를 하려면 오랜 시간동안 땅을 파는 작업을 해야 되서 체력소모가 많다보니 고고학을 하려면 체격도 건강해야 했어요.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스스로를 ‘두더지’라고 부르곤 하죠(웃음). 그리고 학문자체가 장기간에 걸쳐 조사와 연구를 병행해 성과를 내다보니 강한 끈기와 인내심이 요구됩니다. 어떤 학문이든 마찬가지지만 고고학 역시 성과를 내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은 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힘든 과정에도 불구하고 내가 발굴하고 연구해낸 결과물들이 박물관에 전시되거나 역사교과서에 실리게 되면 그 뿌듯함과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연구계획 등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답변 우선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의 학예연구관으로서 맡은 전시와 연구 작업들에 충실할 예정이며 특히 몽골조사사업은 지금까지 흉노무덤 중심에서 도성, 생활유적 등 흉노문화 전반에 걸쳐 추진할 계획입니다.

인터뷰 및 정리-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MUZINE 담당자 / 촬영- 아메바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