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48호


지금 박물관에서는 II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입구 한쪽 벽면은 짙은 푸른색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일명 ‘코발트블루’로 불리우는 이 색은 이란을 비롯한 중동지역에서 생산되는 코발트 광물의 색상이자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성스럽게 여기는 색이기도 하다. 이번 호 뮤진에서는 코발트블루만큼 강렬한 미감을 주는 이슬람 미술품들이 한껏 펼쳐져 있는 기획특별전 <이슬람의 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13년 세계 문명전 시리즈의 하나로 준비한 <이슬람의 보물, 알사바 왕실 컬렉션> 전시는 쿠웨이트 왕실이 수집한 이슬람 미술 컬렉션을 소개하는 전시이다. 한국과 쿠웨이트의 문화 교류 협정 체결 3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이번 전시에는 오랫동안 이슬람 종교를 믿어온 지역의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금속, 도자, 서예, 그림은 물론 건축 관련 자료까지 총 367점의 유물이 소개되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유물들은 쿠웨이트 왕실의 일원인 나세르 사바 알아마드 알사바와 그의 아내 후사 사바 알살렘 알사바가 1970년대 중반부터 수집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광범위한 미술 컬렉션 중 하나로 인정받는 ‘알 사바 컬렉션’의 일부이다.

전시는 이슬람 문명의 미술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시작한다. 7세기 아라비아반도에서 무함마드가 완성한 이슬람 종교는 이후 1,400여 년간 세계 각지에 퍼져나가며 독특한 미술문화를 꽃피웠다. 불교, 기독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로 일컬어지는 이슬람은 인도양에서 지중해에 달하는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융성하였는데, 전시 도입부 패널에 그려진 지도상의 표시로 이슬람이 번성했던 지역이 얼마나 넓은지 가늠할 수 있었다. 지도에 이어 소개된 이슬람 왕조 연표에는 중동, 스페인, 북아프리카, 이집트 · 시리아, 터키, 인도 등의 지역으로 나누어 표시된 각 왕조별 연대와 함께 각 왕조 시대를 대표하는 주화가 전시되어 시각적 흥미를 더해주었다.

본 전시실로 입장하는 관람객을 처음 맞이하는 유물은 쿠란이다. 쿠란은 610년경 예언자 무함마드가 전해 받은 신의 말씀을 기록해 놓은 이슬람의 경전으로 종교를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문명의 대표적인 성물이다. 푸른 코발트 배경에 놓여있는 쿠란이 이번 전시의 정체성울 보여준다. 이어지는 전시는 4부분으로 나뉘어 이슬람 미술의 역사를 보여준다

8~10세기에 해당하는 이슬람 미술의 기원, 11~13세기를 보여주는 이슬람 미술의 다양한 전통, 14~15세기 이슬람 미술의 성숙기와 16~18세기 이슬람 미술의 전성기는 순차적으로 이어지며 관람객을 이슬람 문화의 세계로 인도한다. 아라비아의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를 시작으로 발전한 이슬람 미술은 로마를 계승한 비잔티움 제국, 사산왕조 페르시아 등 주변지역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었고, 종교의 확산을 따라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가며 다양한 지역 특성에 맞는 이슬람 미술 전통을 성립시켜 나갔다. 몽골제국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유행한 연꽃, 구름, 모란, 용 등의 모티브가 유입되고 티무르 제국의 침략으로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문화를 하나로 연결시킨 ‘국제적인 이슬람 양식’을 발달시키며 이슬람 미술의 전성기를 누린 모습 등이 세세한 유물 설명과 함께 소개되었다.

시원하게 뚫린 공간을 이슬람식 건축 모형으로 구분한 전시 후반부는 이슬람 미술의 특징을 5부분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서예, 보석공예, 아라베스크 무늬, 기하학 무늬 그리고 형상표현으로 구분된 각 부는 이슬람 미술에서 각 분야가 차지하는 위치를 보여주며 대표적인 유물의 예를 통해 독특한 표현의 특징을 전달한다. ‘예술로 승화한 문자, 서예’에서는 문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쿠란의 구절을 따라 이슬람 미술의 본질적인 요소로 자리 잡은 아랍어 서체를 소개하였고, ‘화려한 궁정문화, 보석 공예’에서는 17~18세기 인도 무굴제국에서 제작된 뛰어난 보석 공예품을 기본으로 각종 장신구와 장검, 단검 등의 세공 기술을 보여주었다.

이슬람 미술품에 널리 사용된 장식으로 ‘식물무늬의 장식화, 아라베스크’를 따로 조명하여 꽃과 잎사귀, 식물 덩굴 등이 어우러져 자연을 양식화하여 표현한 다양한 유물을 소개한 부분이나, 직선과 곡선 등의 요소로 구성한 ‘무한한 반복의 표현, 기하학 무늬’를 구분하여 반복적인 문양의 유물들을 소개한 부분은 이슬람 미술이 지닌 장식적 특징을 잘 보여 주었다. 마지막 ‘이슬람 미술의 형상 표현’에서는 우상 숭배 금지로 모스크와 같이 종교성을 갖는 장소에서 인간과 동물 등의 형상 표현을 금지했던 이슬람 문화의 특징을 부각시켰는데, 세속적인 일상생활 장식에서는 보다 자유롭게 형상 표현이 이루어졌던 모습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알사바 왕실 컬렉션을 통해 살펴본 이번 특별전은 국내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었던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대규모 전시라는 점에서 많은 준비를 필요로 했던 전시였다. 기본적으로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문명을 소개하는 전시였기에 낯선 종교에 대한 이해를 전달하며 시간적 · 공간적으로 복잡하게 발전한 다양한 왕조의 역사를 짚어주는 세심함은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특정 공예 양식이나 개별 유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관심에 따라 더 많은 정보를 요하는 관객들에게 유용하게 다가왔다. 도자, 유리, 금속, 직물, 돌, 나무, 보석, 세밀화 등을 총 망라한 전시품 구성은 이슬람 미술의 특징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고, 제목 등에서 아랍 문자를 노출시키며 군데군데 시구 등에서 따온 문구를 표기한 부분은 전시에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또한 전시실에서 마주쳤던 전시 도우미들은 중동 사람들이 쓰는 모자를 쓰고 흰색 천을 나부끼며 걸어 다녔는데, 이들 역시 전시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보다 흥미롭게 전시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슬람의 보물>전시는 도심의 번잡함에서 잠깐의 휴가를 얻어 중동의 어느 나라로 여행을 다녀온 듯 기분 좋은 경험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