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48호


보존과학자는 보존과 복원을 통해 문화재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되살리는 사람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장 강형태

전시장의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된 미술품들을 보며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 듯 온전한 모습이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박물관에는 이렇듯 오래된 미술품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살리는 숭고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보존과학자들이다. 그들은 다른 여느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실험실 가운을 걸친 채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X레이를 찍으며 유물을 분석하고 조사한 끝에 붙이고 꿰매고 칠하여 마법처럼 유물을 원 상태로 우리 눈앞에 갖다 놓는다. 이번 호 뮤진에서는 우리가 궁금해 하는 보존과학자의 세계에 대해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장을 맡고 계신 강형태 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문화재 보존처리 작업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답변 우선 문화재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져 있는 중요한 증거물이고 또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전달해야할 어떤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관리해서 후대에 계승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문화재는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여러 원인에 의해서 파괴되고, 멸실됩니다. 또 현재에도 손상될 위기에 처해있는 문화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화재를 과학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해 주어야 하는데 이러한 분야를 총칭해서 '보존과학'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현대 과학의 첨단기술과 장비, 재료를 사용해서 문화재의 수명을 늘리고(conservation), 손상된 문화재를 복원하여(restoration), 적합한 보존환경(preservation)을 만들어 주는데 기여하는 학문이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보존과학분야의 카테고리는 재질별로 도자기, 토기, 벽화, 석조물, 서화, 고문서, 금속, 의복, 직물의 보존으로 나뉘고, 이러한 각 유물의 재질 조사를 하는 분석 분야, 그리고 수장고와 전시유물의 환경관리 분야로 되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들은 약 30만점이 수장고에 보관중이고, 약 1만점이 전시 중에 있습니다. 저희 보존과학부에서는 수장고 내 유물의 보존·복원과 특별전, 테마전, 해외전시 등의 전시를 위한 보존·복원을 기본 임무로 하고 있으며, 연간 보존·복원하는 유물들은 약 1,500 여점 정도입니다. 따라서 보존과학은 박물관운영에 있어 필수과목중 하나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이 분야에 종사하시게 되었나요>

답변 대학에서의 전공은 화학입니다. 저의 전문분야는 문화재 분석분야로 특히, 청동기, 유리, 토·도기, 흑요석 등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전공했습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업무를 총괄하며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회장을 맡고 있죠.1982년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을 시작으로 2,000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30여년 동안 보존과학 관련 일을 해 온 셈입니다.

대학 졸업 후 방사선감독자면허를 따게 됐는데 당시 우연히 세종로에 위치한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면허소지자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갔다가 경주 황남대총 금속 유물들, 신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부식된 유물들이 산더미처럼 박스 속에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유물들을 보존복원 하려면 우선 방사선 비파괴검사를 통해 유물의 내부구조, 부식 위치와 상태, 문양, 상감 등을 확인하고 보존·복원을 해야 하는데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X-선 장비를 사용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당시 보존과학 연구실 이종철 연구관 (전 국립민속박물관장, 전통문화학교 총장)께서 "우리나라 에서는 앞으로 문화재의 전 과학적 보존과 연구가 중요하며, 우리 문화를 과학으로 풀어가는 분야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자연과학을 공부하신 분이 꼭 담당해 주길 바란다"라는 말씀을 듣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보존과학에 대한 국내문헌이 드물었죠. 사무실 한편에 외국문헌만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자연과학도로서 해볼 만한 일이라는 것을 느껴 이 분야에 발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한국의문화재보존 ·복원기술이 세계적 수준이라고 하던데요, 어느 정도로 평가 받고 있는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답변 한국의 보존과학분야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높은 수준에 있습니다. 30여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존과학 분야는 많은 발전을 이룩해왔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현재 각국의 보존복원 방식의 차이는 기술 수준의 다름에서도 오지만, 어느 정도의 기술을 확보한 후에는 각 나라들이 지닌 '보존철학'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유럽의 경우 금제 유물을 보존처리할 때 녹을 많이 벗겨내서 금빛을 반짝반짝하게 내는 것을 중요시한다면, 한국의 경우는 고색(옛날 느낌)을 중시하여 일부 녹은 그대로 남겨두는 것을 선호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는 어떠한 종류와 재질의 문화재도 융합적으로 보존복원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죠. 재질별 전문 인력, 장비, 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며, 담당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의 경력자들로 상당한 맨-파워를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외국기관과도 교류를 꾸준히 하고 있죠. 더불어 문화재청의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센터, 그리고 사립기관인 삼성미술관 리움의 보존과학연구실과 함께 세계적인 높은 수준의 보존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업으로서 보존과학자의 매력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답변 첫째, 보존과학자는 보존복원을 위해서 특정 유물을 장기간 동안 바라볼 수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죠. 사실 고고학자나 미술사학자들도 유물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은 보존과학들보다 부족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유물의 아주 세세한 부분을 보고, 접촉하고, 또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볼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둘째, 보존 과학자는 유물을 과학적으로 조사 분석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데이터 확보는 보존복원 담당자만이 할 수 있는 작업으로써, 이로부터 우리 문화재의 정보를 축적하고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셋째, 보존과학 논문은 다른 과학 분야 논문들에 비해 영속성이 있습니다. 요즘 파인세라믹, 신소재, 생명공학, 나노화학 등 첨단과학들이 유행하고 있지만 워낙 발전 속도가 빨라 일이년만 지나면 휴지조각이 되어 버리죠. 그러나 보존과학 논문은 그 유물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참고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특정 유물의 보존복원을 담당했던 당시 보존과학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존과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나 자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답변 보존과학자는 보존과 복원을 통해 문화재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되살리는 사람입니다. 또 자기가 보존·복원한 문화재의 영원한 책임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보존과학자는 문화재에 대한 숭고한 애정이 있어야 하며, 한 점의 문화재를 되살리는데 수개월에서 수년씩 걸리는 것을 인내심 있게 바라보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또한 보존과학자는 새로운 역사의 실마리를 꼭 찾아내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가져야하며, 전통과 첨단과학을 동시에 소화하고 인접분야와 연계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문화재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보존 과학팀에서 '보존과학부'로 승격이 되었습니다. 남다른 감회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답변 박물관에서 보존과학 업무가 시작된 해는 1976년으로 올해로 37년째가 됩니다. 그때는 단순히 토기나 금속 파편들을 붙여서 복원하는 데에만 치중을 했었고, 또 인력도 2명 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보존복원 할 수 있는 유물 수량도 적었고, 보존실의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박물관이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인력과 장비가 보완되는 등 많은 발전이 있었죠. 사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박물관의 중요 필수과목중 하나인 보존과학분야를 다루는 보존과학부가 이제야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박물관 내 타 부서들과 비교해 보아도 그렇고 또 해외의 유사사례를 보더라도 시기적으로 매우 늦은 감은 있습니다.

현재는 각 분야의 인력들이 보존복원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의 과학적 조사, 연구 능력을 배양했기 때문에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 문화재의 과학적인 특성을 잘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매우 보람됩니다. 하나는 이제 아시아권에서는 우리 박물관 보존과학이 주도권을 가지고 협력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국제학술대회, 심포지엄에서 우리 직원들이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앞으로는 더 큰 보존과학분야의 실적들로 세계 속의 국립중앙박물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인터뷰 및 정리-국립중앙박물관 문화교류홍보과 MUZINE 편집실 / 촬영- 아메바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