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ZINE

48호


전통과 현대의 만남

한국 건축의 마음을 읽다

첫만남

조선 백자에 현대의 숨경을 불어넣는 도예가 김익영

무더운 날씨에도 내외국인 관람객으로 분주한 창덕궁을 찾았다. 북악산 자락을 주산으로 한 창덕궁 건물이 산세와 중첩되어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자연과 어우러진 조선시대 궁의 풍경에 기분 좋은 뿌듯함을 느끼며 담벼락을 따라 한참을 걷자 하얀 외벽의 아담한 건물이 있었다. 그곳은 도예가 김익영 선생님의 작업실 겸 생활도자 브랜드인 '우일요' 매장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학위를 딴 도자 전공 유학생이었던 그녀는 2004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예가로서는 최초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또한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도예가로서 최근 몇 년간 밀라노와 상파울로에서 한국 현대공예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데 앞장서기도 하였다. 백자로 만든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자그마한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원시원한 백자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편안하고 넉넉한 공간 속에서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매와 소녀 같은 미소를 지니신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도예가 김익영

대학에서 본래 화학공학을 전공했던 김익영 선생님은 세부전공으로 요업공학을 공부하기위해 진학했던 대학원에서 도자예술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는데, 당시 일본에서 발간된 요업기술지에 실린 일본 도예작가들의 작품도판을 통해서였다. 공업적인 시각에서 점토원료를 다루던 공학도에서 흙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도자예술가로의 방향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미국정부의 후원을 통해 교환학생 신분으로 머물렀던 알프레드 대학교(Alfred University)에서 운명처럼 만난 영국인 도예가 버나드 리치(Bernard Howell Leach, 1887~1979)의 강연을 듣고 평생 가야할 길이 결정되었다. 낯선 미국 땅에서 만난 영국인 도예가가 '조선 백자가 지닌 미의 세계가 모든 도예가들이 지향하는 목표'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 하자마자 국립중앙 박물관을 찾은 그녀는 미술과에서 3년간 근무하며 조선백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박물관에서 만난 수많은 조선백자들은 미국 유학에서 경험했던 모던한 조형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고 그렇게 전통과 현대에 균형을 맞춘 그녀만의 도자 작업이 시작되었다.

조석백자의 전통과 계승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빛나는 한국의 도자 전통을 오늘날 잘 계승해야 한다는 도예가 김익영. 전통의 바람직한 계승을 위해서는 전통을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백색이라는 하나의 조형요소를 공유한 조선백자가 그토록 많이 전하는 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는 그녀는 우리의 백자가 그 자체로 살아있는 도자의 교본역할을 하기 때문에 적어도 도자의 영역에서는 축복받은 민족이라고 했다. 선조들의 도자유물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부지런히 훈련하고 공부하는 것이 좋은 도자 작품을 위한 자세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자연스럽게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깨끗한 색을 바탕으로 뛰어난 형태감을 지닌 조선백자는 과도한 장식을 배제하여 억지 부리지 않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싫증나지 않고 배울 점을 지니고 있다는 말씀이다. 도자예술의 매력은 50%의 과학과 50%의 미술이 합쳐져서 생긴다는 그녀의 지론은 재료가 지닌 본래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인위적이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은 조선백자만의 독특한 미감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식탁위에서 살아 숨 쉬는 우리 도자기

토전(土田)이라는 호를 지닌 도예가 김익영은 독립적인 미술작품으로 조형성을 강조한 백자 작업과 실제 식탁에 올라가는 식기로 실용성을 강조한 백자 작업을 오랫동안 함께 해 왔다. 두 작업은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같은 가치를 지니는 작업으로, 그녀는 예술성을 지닌 작품도자의 아름다움이 생활공간에 들어왔을 때 그 의미가 커지고 일상적인 공간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백자가 아름다운 것은 실제 생활에서 기능에 맞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 시작된 그녀의 식기 작업은 1978년부터 운영해 온 우일요라는 생활도자 브랜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릇이 지닌 본연의 목적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행복하게 사용하는데 있다는 믿음은 본인이 탐구한 조선백자의 형태적 요소를 대중화시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공유하였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실천되었고, 오랜 시간 식탁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우리 도자기를 빚어내게 되었다.

김익영의 문화재

전통과 현대, 예술과 생활이 한데 어우러지는 김익영 선생님의 작품을 다시 떠올리며 뮤진의 공통질문으로 우리 문화재 중 가장 좋아하시는 문화재에 대한 질문을 드렸다. 행복한 표정으로 좋은 유물이 너무 많다는 대답을 하신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시다가 조선백자 달 항아리를 첫 손에 꼽았다. 볼록한 형태 속에 분명 세부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단순해 보인다는 점에서 엄청난 힘이 함축되어 있는 유물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어 조선백자는 간결함 속에 공간을 압도하는 힘이 압축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즉 조선백자는 하나의 유물로 완성된 것을 넘어 공간을 주고받는 공간의 확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뒤이어 건축에서는 종묘의 정전을 좋아하신다며, 한국의 선이 지닌 아름다움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일어나는 멋스러움이라고 설명이 덧붙여졌다.

도자 작품 속에 재료의 특징과 표면의 조형미, 실생활에서의 기능성과 시각적 심미성, 그리고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모두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도예가 김익영. 그녀는 향후 작업으로 '환경과의 대화'를 시도해 보고 싶다고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변치 않고 주변 공간과 어울리는 도자 작업. 우리 자연 속에 놓여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감동을 선사할 그녀의 새로운 작업을 기대하며, 우리는 오늘도 선조들이 남긴 도자기의 매력을 느끼러 박물관을 향한다.

글 - 국립중앙박물관 문화교류홍보과 / MUZINE 편집실 : 촬영 - 아메바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