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전시실이나 도판에서 볼 수 있는 조선 시대 초상화는 그 인물만 다르고 나머지는 모두 비슷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데군데 뜯어보면 안면이나 의복 선 하나, 표정 하나까지 다양합니다. 또한, 초상화에는 주인공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어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목구비, 섬세한 수염 하나, 복장, 손 동작, 발 모양 등 머리에서 발끝까지 실물을 정확히 묘사하면서 인물의 정신까지 담아내는 초상화는 조선 시대 선비정신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표입니다. 이번 호 뮤진 확대경에서는 <서직수 초상>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서직수는 1965년(영조 41) 진사시에 합격한 후 능참봉을 시작으로 통정대부 돈령부 도정(都正)을 지닌 인물입니다. 이 초상화는 서화를 즐기며 인생을 마친 선비로 그가 62세 되던 해 조선 후기 최고의 궁중화가인 김홍도와 이명기가 그린 것입니다.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체를 그려 합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초상화 중에서 드물게 서 있는 모습을 그렸으며 사대부가 평상시에 쓰던 관인 동파관(東坡冠)을 쓰고 평상복 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얼굴과 몸의 비례가 균형이 잡혀 있을 뿐만 아니라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치켜 뜬 듯한 모습에서 다부진 선비의 품격도 읽을 수 있답니다. 연한 미색의 도포와 새하얀 버선, 단조로움을 피하려는 듯 검정 동파관과 세조대, 연한 고동색의 돗자리가 서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초상화를 확대해 봅니다.
머리에 쓴 검정 동파관은 과장되게 느껴질 만큼 입체감이 강조되었습니다. 동파관의 입체적 표현을 위해 모서리를 중심으로 명암대비를 극대화하여 육면체를 표현하는 방식을 이용했습니다. 정면 모서리를 중심으로 빛의 방향에 따라 음영효과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빛을 받는 오른쪽은 밝게, 반대인 왼쪽은 어둡게 채색했습니다.
도포를 입고 검소한 마루 위에 버선 차림으로 서 있는 그의 얼굴을 봅니다. 외곽선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미세한 붓질로 얼굴의 양감과 굴곡을 드러냈습니다. 외곽선의 특징이나 흐름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얼굴을 배채(配彩) 한 후 선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도록 부드럽게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조선 후기의 주요 표현 기법이기도 하며 이명기 특유의 인물 화법입니다. 이 기법으로 정교한 묘사는 물론 비단 올 사이로 배채한 채색이 투과되어 은은한 색 효과를 내며 부드럽고 사실적인 피부 표현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눈의 윤곽에는 고동색 선을 덧그려 깊이 감을 표현했고 눈동자 주위는 주황색과 푸른 기운을 주어 눈동자가 안에서 바깥쪽으로 타오르는 듯 번지게 그렸습니다. 눈썹 끝이 올라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깐깐한 성품을 짐작할 수 있고, 눈꺼풀에만 속눈썹을 그려 넣었습니다. 코의 외곽선은 뒤쪽과 코볼 끝, 눈 밑, 미간, 광대뼈 아래에도 명암법이 보이는데 이는 얼굴 밑 골격을 바탕으로 한 골상법에 의해 그린 것입니다. 인물의 왼쪽 뺨에 점이 있고 점 위의 터럭 두 가닥까지 철저하게 묘사되어 있을 만큼 사실적입니다.
목의 깃은 동정이 없이 넓게 그려져 있고 얌전히 묶은 검정 세조대(細條帶) 아래 소매는 통이 아주 넓고 길어 무릎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두 손은 편안한 듯 모으고 옷으로 손을 완전히 덮고 있습니다. 옷 주름의 윤곽선을 어두운 미색으로 그렸으며 옷 주름의 그늘도 같은 색으로 음영을 넣어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여줍니다. 동파관에 나타난 빛의 표현은 신체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오른쪽이 밝고 왼쪽을 어둡게 표현해 빛이 오른쪽에서 들어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도포 자락 밑 하얀색 버선발이 돗자리에 올라와 있는데, 조선 시대 초상화에서 이렇게 신발을 벗고 있는 그림은 드뭅니다. 흰색 버선의 채색이 흥미로운데, 어두운 색을 바탕에 먼저 칠한 후 그 위에 밝은 흰색을 덧칠하였습니다. 밝은 색을 바탕으로 어두운 색으로 음영을 주어 입체적으로 만드는 전통적 방식과 반대되는 채색으로 이는 이명기가 서양화의 표현방식을 활용한 것입니다.